[예능史⑤] '동작 그만', 군대 개그의 원조 "국방부에서 찾아와"

[예능史⑤] '동작 그만', 군대 개그의 원조 "국방부에서 찾아와"

2017.11.07. 오후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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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史⑤] '동작 그만', 군대 개그의 원조 "국방부에서 찾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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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史⑤] '동작 그만', 군대 개그의 원조 "국방부에서 찾아와"

"대한민국 군대가 궁금하면 '진짜 사나이' 말고 '동작 그만'을 보자. 이게 리얼이다."

한 네티즌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동작 그만' 소개 글의 일부다. 대학생인 주인공이 학교를 휴학하고 입대한 설정부터 당시 내무반에서 횡행하던 군 가혹 행위 풍자까지 '동작 그만'은 다시 봐도 리얼한 군대 개그의 정석이다.

'동작 그만'은 1988년 6월부터 1991년 5월까지 KBS 2TV '유머 1번지'에서 방영됐다. 주인공 김한국이 실제 군 복무 기간과 동일하게 신병으로 입대해 말년 병장으로 제대하는 전체 과정을 개그로 풀어냈다. 김한국 제대 후에는 김한국의 후임병 김정식이 주인공을 맡았다.

당시만 해도 대중문화계에서 군대를 소재로 다루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1987년 6월 민주 항쟁 이후 불 붙은 민주화 열기와 당시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의 6.29민주화선언에 힘입어 군대를 소재로 한 첫 코미디 코너 '동작 그만'이 탄생했다.

[예능史⑤] '동작 그만', 군대 개그의 원조 "국방부에서 찾아와"

코미디 코너이지만 '동작 그만'은 웃음보다 풍자에 더 초점을 맞췄다. 고참이 후임을 무섭게 갈구고, 구타·가혹 행위로 군기를 잡는 당시 군대 내무반의 부조리한 문화와 상황을 실감 나게 그리며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의 호응을 얻는 것은 물론 전 국민적인 인기를 끌었다. 김한국은 '동작 그만'을 통해 군대 내무반 생활에 대한 풍자를 시도한 개그맨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매회 '동작 그만' 코너를 열었던 성우 故 엄주환의 나레이션도 큰 사랑을 받았다. 나레이션은 프로그램이 방송된 계절과 주인공 김한국의 '짬밥' 경력에 맞춰 내용이 바뀌었다. 1988년 11월 방송에서 "아카시아 꽃만 피면 제대하리라던 시절, 거꾸로 매달아도 세월은 간다던 그 시절. 지금도 비 내리는 연병장에서 낮은 포복을 하는 병사들의 함성이 들려옵니다"였던 나레이션은 1년 후, "돌아보면 일이등병 시절이 어떻게 갔는지 아득해도 꺾어진 상병의 하루는 길기만 하다. 졸병 땐 고참들 때문에 울고 고참이 되어선 졸병들 때문에 운다"로 바뀌었다.

이처럼 '동작 그만'에 리얼리티를 가미한 설정은 다양하고 디테일했다. 김한국과 '메기 병장' 이상운, '내무 반장' 오재미, '곰팽이 이병' 이봉원, 김정식, 이경래 등 출연 개그맨 대부분이 군필자였다. 또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았던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해 대학을 휴학하고 늦은 나이에 입대한 신병 김한국과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입대한 고참병 사이의 갈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며 스토리를 이어나갔다.

군대에서 빠질 수 없는 여자친구 고무신 거꾸로 신는 에피소드나 태권도 대리시험을 쳐주다 들켜 기합을 받는 에피소드, 매일 저녁 전역일을 하루씩 지워나가는 내무반 풍경 등 '동작 그만'은 방영 내내 사실적인 묘사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예능史⑤] '동작 그만', 군대 개그의 원조 "국방부에서 찾아와"

김한국이 병장일 때 충원된 신병 이영남은 배우 이봉원이 연기했다. 잘 씻지 않아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곰팽이'로 불린 이영남은 불시에 내무반을 찾은 사단장 앞에서 관등 성명을 "이병 곰! 팽! 이!"로 하는 등 모자란(?) 캐릭터로 웃음을 자아냈다.

'동작그만'의 기획자이자 코너주 김한국은 YTN Star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동작 그만'이 방송되기 2년 전부터 혼자 코너를 기획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군대 개그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노태우 전 대통령의 6.29 선언 이후 분위기가 바뀌면서 김태기 PD와 '동작 그만'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김한국은 군대 내무반을 배경으로 했지만, 당시 KBS 소품실에서 쓸 수 있는 군 관련 소품이 없어 겪어야 했던 고충도 털어놨다. 그는 "KBS에 군복도 없어 출연자끼리 용산에 가서 사 입었다. 모포나 군용 반합, 철모, 총 등 제대로 된 소품 지원도 없이 시작했다"며 "사실 코미디라는 게 반응을 얻기까지 적어도 6~7주는 걸린다. 그런데 '동작 그만'은 방송 한 주 만에 난리가 났다"고 말했다.

김한국이 말한 '난리'는 바로 국방부의 항의 방문이었다. 국방부에서 대령급 간부들이 KBS로 찾아와 "군인을 소재로 왜 이런 우스개 코너를 하느냐"며 '동작 그만' 방송 중단을 요구한 것. 김한국은 "당시 김태기 PD를 비롯해 여러 제작진이 '현재 군인 이야기가 아니라 15, 20년 전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설득했지만, 이해를 못 하더라. 그나마 있는 소품까지 다 걷어갔다"고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김한국은 또 "모든 개그 코너의 어려움이 다음엔 어떤 주제를 할지 정하는 거다. 그런데 '동작 그만'은 주제 기근이 없었다. 군대 이야기가 할 게 얼마나 많겠냐. 15~20주 치 주제가 대기하고 있을 정도로 주제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며 "'동작 그만'은 당시 60만 군인, 100만 방위, 5만 전경, 몇백만 예비군 고정팬이 있었다"고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동작 그만'은 개그맨 후배들에 의해 'X세대 동작 그만(1995, 코미디1번지)', '新 동작 그만(2004, 개그콘서트)' 등으로 리메이크 됐다. '개그콘서트'의 '송이병 뭐하냐(2010)' 코너나 tvN의 군대 시트콤 '푸른 거탑' 등 군대 내무반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개그가 시도되기도 했다.

한 방송관계자는 YTN Star에 "사실 군대 개그는 대한민국이기에 나올 수 있는 우리만의 코미디 문화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군대와 관련한 추억이 있고, 여자라면 아들이나 남자친구, 오빠를 군대에 보내본 경험이 있을 수 있지 않느냐"며 "'동작 그만'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군대 개그가 발전해 군대 시트콤 '푸른 거탑'이나 리얼리티 예능 '진짜 사나이'가 탄생했으리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YTN Star 김아연 기자 (withaykim@ytnplus.co.kr)
[사진출처 = KBS 2TV '유머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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