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터뷰] '기성세대' 예수정의 책임감..."질서 있는 거리 넘겨줘야죠"

[Y터뷰] '기성세대' 예수정의 책임감..."질서 있는 거리 넘겨줘야죠"

2018.03.03. 오전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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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감독 김용화, 이하 신과 함께)은 1400만 명 이상의 눈물샘을 훔쳤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주인공 자홍(차태현)이 마지막으로 떠올린 이름은 '어머니'였다. 이를 연기한 배우 예수정은 관객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고, 눈물을 쏟게 했다.

김용화 감독은 예수정을 두고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인격적으로도 무릎이 저절로 꿇어질 정도로 훌륭한 분이었다"고 존경심을 드러냈다. 예수정은 촬영 현장에서 극 속 인물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쉽게 목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그런 그가 자홍을 향해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할 때 눈물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현재 방영 중인 tvN 수목드라마 '마더'에서도 그가 보여준 모성애는 위대했다. 극 중 수진(이보영)을 감싼 그의 연기력은 엄마 그 이상의 '존재'를 그렸다.

예수정은 '신과 함께'의 성적에 대해 "반가운 흥행"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도둑들' '부산행' 등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신과 함께'는 짜릿한 재미를 추구하기 보다는 사모곡에 가깝다. 어떻게 보면 지루할 수도 있는데, 이 사회에 아직 이런 정서가 남아 있다는 생각에 따뜻했고, 희망적으로까지 느껴졌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삶을 위한 예술"

예수정은 1979년 연극 '고독이라는 이름의 연인'으로 데뷔했다. 수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극,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대중들에게 조금씩 스며들었다. 예수정은 '예술'을 논하는 배우였다. 데뷔한 뒤 1983년부터 8년간 독일 유학길에 올랐던 이유 역시 "연극이 예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고려대에서 독문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독일 뮌헨대에서 연극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독일에서 공부는 안하고 잘 살다 왔다"고 웃은 예수정은 "유덕형 선생님 연출의 '봄이 오면 산에 들에'라는 작품을 끝내고 독일에 갔다. 독일에 가서도 가끔 생각이 났다.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독일 기숙사에서 찬찬히, 꼼꼼히 걸레질하고 하루 끼니 준비하는 일상을 소홀히 하지 않는 시간들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힘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면서도 "돌아와서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시급해 보였다. 시민이 되려고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독일서 돌아와 그가 한 일은 다소 의외였다. 약 2년 동안 "몸이 허약한 가운데"에도 소비자신고센터도 다녔다. 아이들 교육 문제에 심각성을 느껴 초등학교 특별활동 교사 활동과 반상회 반장도 자진했다. 그런 그가 다시 연극 무대로 돌아온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유치원 근처에 주정차 한 자동차 와이퍼 밑에다가 '아이들이 건널 때 달리는 차가 안 보여서 위험해요.' 라는 글을 놓고 다녔어요. 그걸 하던 어느 날 갑자기 어떤 분이 소리를 지르고 반말을 하면서 '이런 거를 왜 놓냐' '내가 어디 다니는 줄 아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때 그분의 어머니가 오셔서 그 정도로 마무리되었는데, 막 몸이 떨리더라고요. 그걸 우리 아저씨(남편)한테 말하니까 '그래 봐야 소용없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라고 했죠. 저도 2년을 하면서 지친 상태였고요. 극장이 시민 계몽의 공간이라고 했는데, 그럼 극장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딱 그만뒀습니다. 그렇게 열렬한 시민으로 살았어요. 물론 조용하게요."

"아트 포 아트(예술을 위한 예술)요? 그건 즐기죠. 다만 아트 포 라이프(삶을 위한 예술) 쪽으로 신발을 신고 가서 일할 거 같아요"고 말하는 그다.

"시대가 주는 에너지가 있잖아요. 지금도 그렇겠지만 저희 때만 해도 '이래도 되나?'라는 의문점이 든 것이 많았어요. 제 경우, 정의에 대한 관심 보다 답답함이 있었죠. 창문을 열고 시원한 새 공기를 마셔야 할 거 같은 기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선이 저절로 사회 쪽으로 옮겨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꼭 하고 싶었던 말"

예수정을 비롯해 최근 출중한 연기력을 지닌 실버 세대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나문희는 여든 살을 바라보고 있지만, 지난해 각종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독차지했다. 영화 '비밥바룰라'는 연기 경력만 도합 207년의 배우들이 뭉친 작품이다. 다만 예수정은 "그걸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래도 되는 걸까?' 의문이 머리 한 구석을 자꾸 잡아당겨서요. 제가 생각하는 실버는 '침묵의 충언'이 어울리는 세대에요. 어느 날 시청 앞을 가다가 깜짝 놀랐죠. 저희 세대는 태극기에 대한 존중심이 커요. 큰 태극기가 지나가면 침묵, 장엄 모드였는데, 정반대로 굉장히 소란하더라고요. 그분들 나름대로 나라를 위해 애쓰고 계신 거겠죠. 저도 실버 세대인데요. 제가 아는 조금 윗세대 어른들은 이분들과 같은 마음이지만, 이른 시간에 일어나 조용하게 기도를 드려요. 주말에 그들이 광장을 점령한 모습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 안타까웠죠."

그래서 그는 "실버 영화가 많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거기에 정신이 갈 여유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다만 예수정은 "아이들이 태극기를 보면 쉰 목소리, 시끄러움이 떠오르지 않을까"라는 마음에 뒤숭숭했다.

"서울 심장의 한 가운데는 밝음과 질서로 넘쳐나야죠. 시민의 광장은 시민이 밝고 행복하자고 있는 곳인데, 소리를 지르고 사람도 차도 다니기 불편하게 점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정치하는 분들은 정치하고, 우리는 조금 너그럽게 기다려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나 싶죠. 적어도 자신들 나라 대표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예의도 갖췄으면 해요. 나라의 대표를 옆집 강아지 부르듯 부르면 아이들이 그걸 보고 뭘 느낄까요."

그러면서 예수정은 "사실 '신과 함께'는 이미 영화관에서 많이 내렸다"며 "이번 인터뷰를 응한 것은 이 말을 하고 싶어서였다. 이제 실버 세대가 밝고 질서 있는 거리를 넘겨줘야 할 것이다. 많이 미안해하고 있다"고 기성세대가 지녀야 할 책임감을 드러냈다.

"이전과는 다른 모습 기대해주길"

생각하고, 행동하는 어른이었다. 그런 그가 선택한 차기작은 영화 '허스토리'(감독 민규동)다. '허스토리'는 일본 재판부를 발칵 뒤흔들었던 관부 재판 실화를 다룬다. 관부 재판은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 동안 23회에 걸쳐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일본정부를 상대로 벌인 법정투쟁이다. 10명의 할머니 원고단과 그들의 승소를 위해 함께 싸웠던 사람들의 모습을 영화로 구현했다.

"모든 인간은 가리고 싶은 부분이 있잖아요. 그런데 개인이 그 부분을 드러내면서 공적인 삶으로 나서는 순간이 있어요. 그 부분이 조명된 영화입니다. 치부를 드러내면서 전체의 삶 속으로 한 발을 내딛는 거죠. 여태껏 아픔을 꾹 참는 역을 많이 연기했다면 여기서는 화가 나면 싸우고, 말해봐야 소용없는 고통은 그저 담배 연기에 날려버려요. 이전과는 다른 캐릭터라서 재미있었어요. 늘 참느라고 힘들었거든요.(웃음)"

YTN Star 조현주 기자 (jhjdhe@ytnplus.co.kr)
사진 = YTN Star 김태욱 기자(twk557@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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