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리뷰] 예리하고 섬세한...김향기·류현경 '아이'에 반하다

[Y리뷰] 예리하고 섬세한...김향기·류현경 '아이'에 반하다

2021.02.04. 오후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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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도 못하면서 단정하고 틀 안에 가둬버리는 선입견과 편견이 있다. 꼭 모진 말이 아니라도 사람을 아프게 하는 시선도 있다. 타인에 좀처럼 관심을 두기 힘든 시기에도 기억하고 알아야 하는,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가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예리하고도 섬세하게 말 걸고 따듯하게 위로하는, 영화 '아이'(감독 김현탁)의 저력이 여기에 있다.
주인공 아영(김향기)는 보호종료아동이다. 보육원을 나와 자립하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가지만, 서류 한 장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버겁다. 보육교사의 꿈을 가진 아영은 대학에 다니면서 돈을 벌기 위해 영채(류현경)의 베이비시터 일을 시작한다.

영채는 생계를 위해 유흥업소에 나간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공부도 하고 화목한 가정도 꾸리며 평범하게 사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남편과의 사별 후 6개월 된 아들 혁을 혼자서 키워야 하는 삶은 벅차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 아이가 나보다 더 번듯한 부모를 만나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다.


영화는 어엿한 성인이지만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싱글맘 영채와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 버린 보호종료아동 아영이 아기 혁을 매개로 가족보다 진한 연을 맺는 일련의 과정을 그렸다. 영채와 아영 역시 처음에는 '고아', '유흥업 종사자'라는 선입견과 편견에 사로잡혀 서로를 판단하지만, 이내 껍데기 안에 있는 알맹이를 발견하고 연대로 나아가는 모습이 설득력 있게 담겼다.

현실에 두 발을 디딘 '아이'의 서사는 탄탄하다. 연출하고 각본을 직접 쓴 김현탁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수많은 보호종료아동을 직접 인터뷰하고 자료를 조사했다. 그 결과 매체에서 관성적으로 표현되던 보호종료아동의 이미지를 깨부수고, 이들의 실질적 자립과 괴리된 사법 시스템의 문제까지 폭넓게 다뤘다. 작위적인 설정과는 거리가 먼 손에 잡히는 사례는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뚜렷하게 한다. 나아가 돌봄, 가족의 범위와 의미에 대해 재정의하기에 이른다.

구체적이지만 적나라하지 않다는 점은 영화가 지닌 미덕이다. 영화는 사건과 문제를 소비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그간 매체에서 소비적으로 다뤄지곤 했던 직업군과 대상의 이면을 비춘다. "아이들이 너무 어둠에 빠져있는 채로 그려지는 걸 가장 두려워하더라. 그런 지점을 최대한 피하려고 했다"는 감독의 의도가 영화 곳곳에 베여 있다. 절대 악인을 등장 시켜 고난을 주기보다 실질적인 걸림돌을 표현하는데 집중했다. 문제를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은 조심스럽고 세심하다.

그런데도 허구의 이야기는 내 옆에서 벌어지는 것 마냥, 생생하다.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또 다른 차원에서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한다. 러닝타임이 흐를수록 캐릭터의 감정에 이입하게 만드는 탓이다. 억지로 쥐어짜거나 작위적인 설정 없이도 가슴이 아린다. 감정이 절제된 대사와 연출이 큰 역할을 한다. 두 주인공의 뒷모습을 비추는 카메라의 시선만으로도 끈끈한 연대를 느낄 수 있다는 점, 이 영화가 지닌 힘이다.

탄탄한 시나리오를 생동하게 하는 건 배우들의 호연이다. 연대감이 느껴지는 호흡으로 영화의 진정성을 채웠다. 김향기의 조용하면서도 폭발력 있는 연기가 울림을 준다. 반팔티에 청바지를 입고 극적인 표정 변화 없이도 112분을 힘있게 끌고 나간다. 채워지지 않은 결핍에 자기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타인에 깊은 연민을 품은, 그 감정을 탁월한 완급조절로 표현해낸다.

류현경의 역할도 만만치 않다. 영채라는 인물을 마냥 선하거나 악한 인물로 재단할 수 없는 건 배우의 소화력 덕분이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초보 엄마의 스트레스와 서툰 육아를 표현한 리얼 연기가 돋보인다. 아영 역의 김향기와의 호흡도 좋다. 아영을 만나고 앞으로 내디딜 힘을 되찾는 미묘한 변화를 호소력있게 담아냈다.

"'저런 사람들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저런 친구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까'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그 선입견에 반문하고 싶었다." 특정한 이미지와 편견을 비틀며 영화는 말한다. 저런 친구들도 '함께'라면 잘 자랄 수 있고, 또 잘 키울 수 있다고. 먼 이야기가 아닌 사실은 우리 주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살아 숨 쉬는 이야기라고. '아이'가 주는 여운이 적지 않다.

오는 1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2분.

YTN Star 반서연 기자 (uiopkl22@ytnplus.co.kr)
[사진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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