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초점] '포화 속으로'·'독전'·'낙원의 밤'...차승원의 악역 변천사

짙은 눈썹, 강렬한 눈빛, 압도적인 아우라의 장신, 출중한 연기력. 차승원은 악역을 소화할 수 있는 모든 요건을 전부 갖춘 배우다.

흔히 남자배우들은 중년에 접어들면 원하든 원치않든 연기파 또는 인상파 배우로 자리를 잡아가지만, 차승원은 보란듯이 스타일과 연기력 두 마리 토끼를 놓치지 않은 채 오래도록 롱런 중이다. 1988년 모델로 먼저 데뷔해 1997년 영화 '홀리데이 인 서울'의 단역으로 영화계에 발을 내딛은 차승원은 어느덧 연기 24년차의 베테랑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동안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폭넓은 연기를 선보인 그는 코믹한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악역을 연기할 때마다 유독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부산은 이 박무랑이가 제일 먼저 접수합네다"

대중에게 자주 회자되는 차승원의 악역 캐릭터는 '포화 속으로'의 박무랑이 대표적이다. '포화 속으로'는 1950년 8월 한국전쟁의 운명이 걸린 낙동강 지지선을 지키기 위해 전장 한복판에 뛰어든 71명 학도병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차승원은 해당 작품에서 영덕을 초토화 시킨 북한군 진격대장 박무랑 역을 맡았다. 적이건 아군이건 자신의 신념에 어긋나는 인물이라면 처단을 서슴지 않는 극악무도한 캐릭터다.

'국경의 남쪽'으로 마스터한 북한 사투리를 '포화 속으로'의 박무랑 캐릭터로 더 자연스럽게, 또 잔혹스럽게 소화해냈다. 특히 박무랑이 첫 등장해 장성급 장교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이 명장면으로 꼽힌다. 차승원은 해당 캐릭터로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분위기의 북한군을 연기했으며, 영화의 메인 주인공보다 더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는 평을 얻었다.

"우리 다함께 기도합시다"

우정출연으로 ‘독전’(2018)에 등장했다가, 인생캐릭터를 만들고 퇴장했다. 차승원은 '독전'에서 유령 마약 밀매 조직의 숨겨진 인물인 브라이언 이사 역을 맡아 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악역을 선보였다. 브라이언은 극중 주인공 원호(조진웅)가 마약밀매 조직의 수장인 이선생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만난 미스터리에 둘러싼 인물 중 한 명이다. 무슨 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 없는 광기 같은 매력으로 극의 긴장감을 높이는데 일조했다.

차승원은 브라이언으로 차승원이 아니면 누구도 소화할 수 없는 독보적인 캐릭터를 구축했다. 범상치 않은 단발머리, 블랙 앤 화이트로 번갈아 바뀌는 수트 패션 등으로 시종 시선을 집중시켰다. 여기에 인자한 듯하면서도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낮고 경건한 말투와 함께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관객들에 트라우마를 남겼다. 악역 캐릭터가 줄을 잇는 '독전'에서도 관객들을 단번에 사로잡는 강력한 존재감을 발산했다.

"우리 계산할 거 있잖아, 어?"

2021년에도 차승원의 악역 카리스마는 거듭된다. 차승원은 오늘(9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누아르 신작 '낙원의 밤'에서 흔치 않은 개성의 악역 마이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마이사는 주인공 태구(엄태구)가 속한 조직의 라이벌 북성파 조직의 핵심 인물. 태구를 요단내기 위해 제주도까지 쫓아가는 무시무시한 결단력의 소유자다. '신세계' '마녀' 등의 작품을 통해 매력적인 악역 캐릭터를 창조했던 박훈정 감독의 또 다른 '야심캐'다.

마이사 캐릭터는 '독전' 못지 않은 차승원만의 개성과 업그레이드 된 악랄함으로 중무장했다. 아무리 밑바닥이라 한들 자신만의 철칙은 무조건 지키는 '따뜻한 프라푸치노'와 같은 면모로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캐릭터다. 험악한 문장 곳곳에 위트가 섞인 독특한 화법으로 분위기를 장악한다. '독전'에 이어 '낙원의 밤'에서 보여준 냉소적인 눈빛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래도록 남는다.

YTN Star 이유나 기자 (lyn@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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