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리뷰] 조던 필 신작 ‘놉’… 뻔한 UFO 영화냐 묻는다면 “놉”

[Y리뷰] 조던 필 신작 ‘놉’… 뻔한 UFO 영화냐 묻는다면 “놉”

2022.08.11. 오후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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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리뷰] 조던 필 신작 ‘놉’… 뻔한 UFO 영화냐 묻는다면 “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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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기사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감독 데뷔작인 ‘겟 아웃’으로 2018년 제90회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하고, 후속작 ‘어스’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며 수많은 마니아를 양산한 조던 필 감독이 돌아왔다.

‘조동필’이라는 애칭이 있을 정도로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 그의 새로운 신작은 ‘놉’(Nope). ‘아니’라는 감탄사의 영화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이 외딴 시골 마을의 하늘에 등장한 뒤 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현상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계에 말을 공급해주는 어느 목장에서 발생한 기이한 사건을 시작으로 문을 연다. 하늘에서 떨어진 동전에 맞아 아버지가 사망했고, 아버지를 떠나보낸 두 남매는 구름 속에 UFO가 있음을 알게 된다. 베테랑인 아버지 없이 목장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운 상황. 동생은 UFO를 촬영해 돈과 명예를 모두 얻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남매는 이내 행동에 나선다.

[Y리뷰] 조던 필 신작 ‘놉’… 뻔한 UFO 영화냐 묻는다면 “놉”

‘놉’은 UFO를 주요 소재로 내세운 SF 미스터리 영화의 외피를 쓰고 있다. 미지의 존재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그것에서 야기되는 두려움이 스크린을 뒤덮으며 영화는 불안과 긴장을 조장하는 서스펜스 장르물로써 제 역할을 다한다.

그러나 앞서 조던 필 감독의 영화들이 은유와 비유 그리고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번 작품 역시 단순히 UFO에 관한 영화로만 보이지 않는다. 그간 인종차별이나 미국 사회 내 모순에 대해 이야기해 왔던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영화계와 스크린 밖에 앉아있는 관객들을 향해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정확히는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와 땀을 흘리고, 때로는 목숨마저 잃는 숨은 주역들에 대한 찬사를 보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Y리뷰] 조던 필 신작 ‘놉’… 뻔한 UFO 영화냐 묻는다면 “놉”

에드워드 머이브릿지의 ‘달리는 말’이라는 2초짜리 영상은 영화의 시초가 됐지만, 현실에서는 영상 속 기수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영화는 주인공인 OJ 헤이우드(다니엘 칼루야)가 최초의 영화배우이자 최초의 스턴트맨인 그 무명 기수의 후손이라는 설정으로 출발한다.

OJ 헤이우드의 선조와 그의 아버지는 영화산업을 영원히 바꿔 놓았지만, 그 누구도 이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버지 역시 영화사에서 인정받기 위해 여전히 말 키우기에만 힘쓸 뿐이다. 아버지가 사망하고, OJ는 그의 유지를 잇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그는 미지의 물체를 영상으로 담기 위해 제 목숨을 건다. 자신의 옛 선조보다 더 멋지고 경이로운 모습으로 스턴트를 해내고, 촬영 역시 성공한다. 온 세상이, 영화계가 헤이우드 가문에게 또 한 번 빚을 진 셈이다. 별다른 노력 없이 자신의 운에 대한 확신만으로 가득 찼던 리키(스티븐 연)가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Y리뷰] 조던 필 신작 ‘놉’… 뻔한 UFO 영화냐 묻는다면 “놉”

극 중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전설적인 촬영 감독 앤드러스 홀스터(마이클 윙컷)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의 가십 웹 사이트 TMZ의 카메라맨이 돈과 유명세만을 쫓아 무모하게 돌진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그는 완벽한 영상을 촬영하겠다는 일념으로 가득하다.

정상에 올라 모두가 우러러보고 주목받는 영상을 촬영하는 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이라 칭했지만, 그는 그 불가능한 꿈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죽음을 불사하며 피사체를 향해 의연하게 걸어가는 장면은 현실 속 수많은 감독들을 떠오르게 한다.

수동 아이맥스 카메라를 들고 모래 폭풍을 뚫고 들어가는 모습은 마치 ‘놉’을 촬영한 호이트 반 호이테마의 또 다른 분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스크린 밖에서 영화를 보지만 마치 ‘놉’을 통해 ‘놉’을 촬영한 이들과 마주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 이유다.

[Y리뷰] 조던 필 신작 ‘놉’… 뻔한 UFO 영화냐 묻는다면 “놉”

현실에서 ‘놉’을 보는 관객과 영화 내에서 하늘 속 ‘그것’을 응시하는 이들은 모두 화려하고 눈길을 사로잡는 것에만 몰두한다. 영화 내내 OJ가 “하늘을 보지 말라”라고 소리치지만, 영화 속의 이들과 마찬가지로 스크린 밖의 우리 역시 화려하고 거대한 그 미지의 생명에 홀려 하늘만을 응시한다.

OJ와 에메랄드(케케 파머), 홀스터의 희생과 노력이 없었다면 하늘은 그저 하얀 구름만 가득했을 뿐, 그 화려하고 거대한 무언가는 결코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현실 역시 영화와 다르지 않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땀과 용기가 없었다면 우리가 보는 수많은 영화는 결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살기 위해 하늘을 보지 말라는 OJ의 외침은 영화가 생명을 이어 가기 위해서는 화려한 작품만이 아닌 그것이 만들어지기까지 그 이면에 있는 것들을 바라봐야만 한다는 일종의 선언처럼 들린다. 때문에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 속 수많은 이름이 사라질 때까지 다리를 움직이기란 쉽지 않다.

미지의 생명체가 마을을 집어삼키는 SF 서스펜스 혹은 남매간의 뜨거운 가족 드라마의 탈을 쓰고 있지만, ‘놉’이 단지 거기서 그친다고 묻는다면 ‘놉’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조던 필 감독 연출. 다니엘 칼루야, 케케파머, 스티븐 연, 마이클 윈콧 등 출연. 러닝타임 130분. 12세 이상 관람가. 8월 17일 개봉.

[사진 제공 = 유니버설 픽쳐스]

YTN 김성현 (jamkim@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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