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피플] 엄정화, 데뷔 30년에도 전성기 개척한 리얼 차정숙

[Y피플] 엄정화, 데뷔 30년에도 전성기 개척한 리얼 차정숙

2023.06.05. 오후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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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피플] 엄정화, 데뷔 30년에도 전성기 개척한 리얼 차정숙
가수 겸 배우 엄정화 [JTBC,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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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차정숙'들이 언제나 스스로를 믿고 꿈을 찾아 용기를 냈으면."

어느덧 데뷔 30년 차가 된 가수 겸 배우 엄정화 씨가 JTBC 토일드라마 '닥터 차정숙'(극본 정여랑 연출 김대진) 종영을 맞아 남긴 소감이다. 여느 드라마 주연 배우 특히 시청자의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의 주인공으로서 능히 할 법한 이야기지만, 배우로서 적지 않은 나이에 '인생 캐릭터'를 경신한 엄정화 씨의 말이어서 더욱 와닿는다.

지난 4일 막을 내린 '닥터 차정숙'은 최종회에서 18.5%(닐슨코리아 전국 가구 기준)를 기록하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비록 20%의 벽을 넘지는 못했으나, '부부의 세계'(28.4%, 1위) '재벌집 막내아들'(26.9%, 2위) 'SKY 캐슬'(23.8%, 3위)에 이어 JTBC 역대 시청률 4위에 이름을 올렸다.

'닥터 차정숙'은 가정주부에서 의사가 되기 위해 도전하는 차정숙의 찢어진 인생 봉합기를 그린 드라마다. 엄정화 씨는 극중 의대 졸업 후 20년 넘게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아오다 가정의학과 1년 차 레지던트가 되는 차정숙 역을 통해, 2017년 MBC 드라마 '당신은 너무합니다' 이후 6년 만에 주인공을 맡았다.

시청자의 뜨거운 호응을 받은 작품치고는 '닥터 차정숙'의 이야기가 아주 신선하지는 않았다. 큰 줄기를 이루는 소재는 드라마 단골인 '불륜'이다. 가족을 위해 희생만 해오다 시한부 선고를 받는 여주인공이 남편의 외도까지 알게 되면서 인생 최고의 위기를 맞이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인생 2막을 연다는 스토리는 안방극장에서는 흔하디 흔하다.

식상함을 희석시킨 것은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의 힘이 컸다. 모든 캐릭터에게 인간적인 면모를 심어 넣고, 남몰래 고뇌하는 에피소드를 설치해 시청자의 공감을 유발했다. 심지어 모든 갈등의 중심이 되는 남편 서인호(김병철 분) 마저도 지질함과 코믹함을 적절히 섞어 일각에서 '귀엽다'는 반응을 얻을 정도. 그만큼 하나하나에 애정이 담긴 캐릭터들의 향연이었다.

특히 주인공인 차정숙은 본연의 선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고집 있는 캐릭터로서, 요즘 트렌드에 비춰 자칫 답답하게 그려질 수 있는 상황들을 이겨내는 힘이 있었다. 간 이식 수술 후 가족들이 모두 말리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꿈을 향해 전진하는 실행력을 보여줬고, 여러 극적인 상황에서 뒤로는 처절하게 울어도 앞에서는 냉정한 태도를 유지했다. 막장으로 흐를 수 있는 전개는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대처하는 차정숙 캐릭터로 중화됐다.

엄정화 씨는 예능에서 보여주던 따뜻한 미소와 소녀 감성, 무대 위에서 보여주던 카리스마를 오가며 차정숙의 폭넓은 감정 변화를 소화했다. 드라마에서 우리가 익숙하게 만나온 '줌마렐라'(아줌마+신데렐라) 캐릭터였음에도 차정숙이 어딘가 다르게 느껴진 것은 종전 인물과는 결이 다른 캐릭터 설정의 영향도 있겠지만, 엄정화 씨만의 설득력 있는 연기력이 큰 몫을 했다.


활동 기간이 긴 만큼 적잖은 위기와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겠지만, 엄정화 씨는 가수로서도 배우로서도 꾸준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 또한 스스로 언급한 수많은 차정숙 중 하나였고, 30년의 활동 기간 동안 쌓인 연륜이 차정숙에게 녹아 나왔다. 엄정화 씨가 아닌 '닥터 차정숙'을 상상하기 어려운 이유다.

1993년 영화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로 연예계 입문한 엄정화 씨는 1집 앨범 '눈동자'로 가수로 데뷔했다. ‘배반의 장미’, ‘포이즌’, ‘초대’, ‘몰라’, ‘페스티벌’ 등 수많은 히트곡을 쏟아내며 199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연기를 향한 열정도 놓지 않았다.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 '해운대', '댄싱퀸', '미쓰 와이프', '오케이 마담' 등으로 꾸준히 연기하며 만능 엔터테이너로 입지를 굳혔다. 2010년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뒤 음반 활동이 다소 뜸해지는 듯했지만, 2017년에는 11년 만의 정규 앨범인 10집 '더 클라우드 드림 오브 더 나인'을 발표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최근 MBC '놀면 뭐하니?'에서 이효리, 제시, 화사 씨 등과 환불원정대의 맏언니로 나서 '한국의 마돈나'로서 면모를 과시한 데 이어, 현재 방송 중인 tvN '댄스가수 유랑단'에서 현역 댄싱퀸으로서 여전한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무대에서 ‘포이즌’ 등 히트곡들을 부르며 안무를 추는 모습이 각종 SNS와 유튜브에 올라오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여기에 '닥터 차정숙'의 성공까지 더해 엄정화는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할 정도로 어느 때보다 존재감이 강렬하다.

그는 드라마 종영 인터뷰에서 "얼마 전 '댄스가수 유랑단'으로 대학 축제무대에 섰는데 '내가 누구게?' 하고 물었더니 '차정숙!'이라고 다 같이 외쳐주시더라. 제 이름이 아니라 극중 이름으로 불린 적이 처음이다. 내 이름으로 불린 것보다 더 기뻤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50대에 들어서서 인생 캐릭터를 새로 만났으니, 엄정화 씨가 훗날 또 다른 흥행작을 탄생시켜 차정숙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 못할 법도 없을 듯하다.

YTN 최보란 (ran61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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