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터뷰] "네가 배우를?"...'마스크걸' 이한별, 그럼에도 연기자 꿈꾼 이유

[Y터뷰] "네가 배우를?"...'마스크걸' 이한별, 그럼에도 연기자 꿈꾼 이유

2023.09.09.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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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 같은 신인의 등장이다. 이제 갓 연기에 발을 디뎠지만, 글로벌 OTT 작품의 주연으로 발탁되는 행운을 누린 배우 이한별 씨(31)다.

이한별 씨는 8월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스크걸'(극본·연출 김용훈)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겪으며 극적으로 변모해 가는 3인 1역-새 개의 다른 얼굴과 다른 신분인 인터넷 방송 BJ, 쇼걸, 교도소 수감자-중 가장 먼저 등장하는 김모미 역을 맡아 극의 시작점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고현정 씨, 나나 씨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신인 배우. 게다가 작품 공개 직전까지 정체가 비밀에 싸여있었기에 이한별 씨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것은 당연했다. 지난해 10월 촬영을 마친 뒤, ‘마스크걸’이 공개되기까지 장장 10개월 동안 비밀을 간직한 채 기다린 셈이다. 이한별 씨의 마음속에서는 내내 기대와 우려가 교차됐다.

"공개되기까지 꽤 시간이 있었어요. 처음에 듣기론 6월 공개였는데 8월이 되다 보니 언제 나오나 싶다가도 막상 나온다니 ‘벌써?’ 싶기도 했죠. 캐스팅 공개된 후에는 연락한 지 한참 된 친구들부터 동창들, 함께 작품 했던 분들 등 연락을 많이 주셨어요. 일부러 시청자 반응을 찾아보지는 않았는데, 근래 밖에 나오면서 알아봐 주시기도 하고 잘 봤다고 말씀 주시기도 하니까 작품의 인기를 조금씩 실감해요.“

연기 경력으로 초스피드 데뷔지만, 이한별 씨는 1992년생으로 신인치고 적은 나이는 아니다. 대학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던 그녀는 대학을 다니다 뒤늦게 연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진로를 틀어 연기 학원에 등록하고, 단편 영화나 학생 작품 등에 출연하며 배우의 길에 막 들어섰는데, 운명처럼 '마스크걸'을 만났다. 연기자라는 꿈을 꾸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창작자라는 꿈을 향한 목마름은 이미 오래됐다.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사람이 드러나는 창작 작업을 좋아했고, 나를 투영한 뭔가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마침 디자이너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인기여서 패션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됐죠. 그런데 조금 배워보고 나니 이 산업에 대해서 제가 생각한 것과 다른 지점이 있었죠. 이후 영화, 책, 연극 이런 것에 되게 빠졌어요. 그러다 1인 극을 보게 됐는데 아주 강렬했어요. 아무런 장치도 없이 배우 혼자 2~3시간 동안 침을 튀기고 땀을 흘리며 독백을 하는데, 저와는 다른 세계 사람 같은 아우라를 느꼈어요. 저도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연기 학원으로 찾아갔어요."

이후 얼마 되지 않아 황금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그녀의 프로필이 새로운 얼굴을 찾던 ‘마스크걸’ 관계자의 눈에 띈 것. 이한별 씨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4개월간 진행된 오디션 과정에서 수차례 연기 영상을 찍어 보내고, 대면 오디션까지 마친 끝에 10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김 모 미 역을 맡게 됐다. 뛸 듯이 기뻤지만 자신이 고현정 씨와 같은 역할에 캐스팅됐다는 사실이 도저히 실감 나지 않았다고.

"고현정 선배님과 한 작품, 그것도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게 와닿지 않았어요. 이후에 나나 선배님까지 출연이 확정되고, 촬영을 위해 신체 사이즈나 이런 것들도 좀 맞춰보고 그러면 서야 ‘아, 정말 같이 하나보다’ 싶었죠. 잘해야 할 텐데, 작품에 누를 끼치지 말아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죠.”

이는 기우였다. ‘마스크걸’이 공개됐을 때 시청자들이 이한별 씨를 보고 놀란 것은 원작 캐릭터와의 놀라운 외모 싱크로율 때문만은 아니었다.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급변하는 상황 속에 감정의 진폭이 큰 인물을 안정감 있게 소화한 그의 연기력은 이한별이라는 배우에 대한 궁금증을 높였다.

"모미의 서사를 촘촘히 쌓아서 가기보다는 큰 사건들 위주로 에피소드가 진행되는데, 또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잖아요. 그렇다고 비현실적인 인물로 보이고 싶진 않았거든요. 어딘가 있을 법한 인물이었으면 했어요. 특히 첫 번째 모미는 시청자의 감정이입이 중요한 미션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핸섬스님과 모텔에 간 장면을 연기할 때 가장 고민이 많았어요. 모미의 인생이 급변하는 대목이라 균형을 잡기가 어려웠어요. 다행히 현장에서 많은 것들이 해결됐어요. 콘티가 완벽하게 짜여 있었고 거의 바뀌지 않았지만, 감독님이 모미로서 제 감정을 물어봐 주시고 그에 맞춰 제 위치라든지 액션 등에 변화를 줬어요. 동물적인 감으로 완성할 수 있었던 그런 장면이었던 거 같아요. 가장 걱정됐지만 가장 재밌었고,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아요.“

김용훈 감독은 모든 것이 처음이나 마찬가지인 이한별 씨가 모미로 변신하는 데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의 의견에 귀 기울여 주는 연출자와 함께 논의하며 연기하는 것은 이한별 씨에게 귀중한 경험이 됐다.

"감독님께서는 모미라는 캐릭터를 인위적으로 만들기보다는 인간적인 부분을 살리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계속 얘기하셨거든요. 웹툰에서 약간 각색이 된 부분도 그런 (현실에 있을 법한 캐릭터의) 요소들을 넣고자 하셨고요. 그래서 오디션 때도 저에 대해서 물어보시기도 하셨고 저의 원래 모습이나 지금까지 쌓아온 생각들이 드러났으면 좋겠다, 그런 것들이 결국 모미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얘기해 주셨어요. 덕분에 자연스럽게 모미에 대해 감을 잡았던 것 같고, 감독님의 해석과 크게 벗어나지 않게 연기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마스크걸'은 고현정, 나나, 이한별 씨가 3인 1역으로 주인공을 연기하는 색다른 시도로 화제가 됐다. 하지만 자신의 분량을 모두 촬영한 뒤에야 두 배우가 연기한 김모미를 볼 수 있었다는 이한별 씨. 고현정 씨와 나나 씨가 연기한 김모미를 보고 감탄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고현정 선배님은 마지막에 딸을 보고 아무 말 없이 웃어주는 표정이 있잖아요. 어떤 대사보다도 더 와닿는 게 있었어요. 뭔가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지만 하지 못하는 그런 마음이 눈빛에서 느껴져서 울컥한 부분이에요. 또 나나 선배님은 흑백 장면이 굉장히 강렬하게 나왔었잖아요. 그 액션 장면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눈빛이 계속 강렬했고, 큰 사건을 겪고 나서 변화한 모미의 그 눈빛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아쉽게도 고현정 씨, 나나 씨와는 한 인물의 각각 다른 시기를 연기했기에 작품 안에서 만나지는 못했다. 주로 호흡을 맞춘 것은 안재홍 씨. 이번 작품에서 그가 보여준 열정과 현장에서의 배려가 이한별 씨에게 좋은 자극이 됐다.

"제가 뭔가 감을 못 잡거나 다시 촬영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묵묵하게 맞춰주시고, 아이디어를 내신다거나 분장할 때 열정적으로 임하시는 모습을 보고 많이 배웠어요. 먼저 대사를 맞춰보자고 해주시고, 액션이 들어가는 장면에서도 제가 마음 편하게 연기할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연기뿐 아니라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소통이나 역할에 집중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도 많이 보고 배웠죠. ‘마스크걸’ 공개되는 날 데뷔 축하한다고 연락도 주시고, 이후에도 계속 응원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정말 큽니다."

극 중 모미는 남다른 끼와 재능을 지녔지만, 외모에 대한 평가 때문에 꿈을 포기한 인물이다. 배우나 가수 등 대중 앞에 서는 직업을 지망할 때 1차적으로 외모에 대한 평가가 뒤따르는 것이 현실. 이한별 씨도 연기를 하고자 했을 때 그런 순간을 겪었다.

"‘연예인’하면 딱 떠오르는 완벽한 이미지들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부모님은 조금 우려하시긴 했어요. ‘현실이 이런 데 괜찮겠냐’는 얘기를 하는 분들도 있었고요. 오히려 응원을 해주는 친구들도 있었죠. 하지만 스타가 되겠다거나 외모로 각광받거나 이런 걸 원했다기보다 연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 꿈을 향하다 보면 제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제가 필요한 역할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배우는 이런 사람만 하는 거야’라는 마음으로 시작하지 않았기에, 제가 갖고 있는 것들로 최선을 찾는데 집중했어요."

'마스크걸'은 그런 이한별 씨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것을 알려준 작품이다. 또한 연기라는 것이 결코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이 아니라, 많은 창작자들과 함께 완성해가는 거대한 종합예술임을 일깨워 준 작품이기도 하다.

”저 혼자만의 상상으로 해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의상과 공간 등 모든 것이 완벽하게 펼쳐진 상황에서 많은 분과 상호작용하며 모미라는 인물을 만들어 가는 작업이 정말 즐거웠어요. 선배님들과 스태프들이 한마음으로 열과 성을 다해 작품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요. 배우로서도 이전에는 막연히 스스로에 어떤 한계를,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선을 그어두고 있었던 거 같아요. '마스크걸' 통해 예상하지 못했던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었는데, 물론 제 연기가 많이 부족하고 아쉬움도 많지만, 좀 더 다양한 도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용기가 생겼어요. 조금은 자신감을 갖고 시작할 수 있게 됐어요.“

그래서 이한별 씨는 "만약 모미를 만날 수 있다면 어린 시절의 그녀에게 ‘너는 충분히 예쁘고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랬다면 모미가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순간이 한 번은 있지 않았을까요"라며, 자신이 모미로부터 얻은 용기가 작품 속 그녀에게도 닿길 바랐다.

[사진 = 넷플릭스 제공]

YTN 최보란 (ran61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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