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리뷰] 기발함으로 엮어낸 ‘거미집’…영화에 대한 야심,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리다

[Y리뷰] 기발함으로 엮어낸 ‘거미집’…영화에 대한 야심,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리다

2023.09.21. 오전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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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리뷰] 기발함으로 엮어낸 ‘거미집’…영화에 대한 야심,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리다
영화 '거미집' 스틸컷 ⓒ바른손이앤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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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영화를 만들고, 우리는 왜 영화를 보는가?

영화에 대해 치열하게 울부짖고 광기 어린 웃음으로 가득 찬 한바탕 소동극 ‘거미집’으로 5년 만에 돌아온 김지운 감독이 영화 예술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관객 곁으로 돌아왔다.

영화 ‘거미집’은 1970년대 영화 촬영 현장을 배경으로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열 감독(송강호)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데뷔작 이후 싸구려 치정물을 찍는 감독이라는 멸시 속에서 살아온 김열은 꿈에서 생생하게 반복되는 장면을 보고 재촬영을 결심한다. 그는 ‘비난이 무서워 외면하면 죄악이 된다’라는 신념과 ‘아무것도 못 하고 영화 인생을 끝낼 수 없다’라는 절박함 속에서 촬영을 강행한다.

하지만 당국은 영화가 반체제적이고 미풍양속을 저해한다며 검열의 날을 세우고, 배우들과 스태프들 그 누구도 바뀐 내용과 결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제작자 역시 ‘예술 말고 하던 거나 하라’며 재촬영을 막는다.

이처럼 각자의 욕망과 이해관계가 잔뜩 뒤섞인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며 김열은 미치기 일보 직전의 벼랑 끝에 놓이지만 촬영을 밀어붙인다. ‘영화는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는 결심 속에 필름은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흥미로운 것은 현실의 ‘거미집’과 영화 속 ‘거미집’ 모두 기존의 관습적인 영화적 문법은 거부하고, 규정되지 않은 새로운 길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관객들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색다른 것, 새로운 것을 원한다”라는 작품 속 대사는 영화 안팎에서 충실하게 이행된다.

덕분에 러닝타임 내내 펼쳐지는 이야기를 비롯해 등장인물들의 사소한 대사마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교묘하고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감독은 때때로 이를 구태여 구분 짓지 않고 혼재된 상태로 둔다.

영화 속 김열 감독의 목소리가 현실 속 김지운 감독의 외침처럼 들리기도 하고, 배우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스크린 밖 관객에게 건네는 질문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이들의 음성에는 영화인들을 비롯해 영화를 관람하고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박수와 찬사는 물론이고, 자조 섞인 농담과 조소 또한 담겨있다.

여기서 단연코 돋보이는 것은 생명력 넘치는 송강호 배우의 열연이다. 땅끝까지 좌절했다가도 일순간 벅차오르는 자신감으로 달려 나가는 그의 미묘한 감정 변화와 섬세한 표정 연기는 다시 한번 송강호의 발견을 보여준다. 익숙한 듯하지만, 낯선 그의 얼굴은 영화 속 영화와, 영화 속 현실 사이 회색지대에 당위를 더하며 관객의 몰입감을 더한다.

‘거미집’의 주역인 이민자(임수정), 강호세(오정세), 한유림(정수정), 오 여사(박정수) 그리고 제작자인 백 회장(장영남)과 그의 조카 신미도(전여빈) 등의 활약도 눈부시다. 이들이 펼치는 앙상블 코미디와 연기 대결은 그 자체로 보는 재미를 배가한다.

전여빈은 명불허전의 연기력으로 유머와 진중함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극의 맛을 한층 더한다. 그는 ‘거미집’을 통해 장르와 캐릭터의 구분 없이 확장이 가능한 배우임을 스스로 증명한다. 오정세 역시 그간 다양한 작품에서 보여줬던 탄탄한 연기력이 빛을 낸다. 능글맞으면서도 적재적소에 알맞은 캐릭터 활용법으로 극을 이끈다.

짧지만 강렬한 존재감을 보이는 임수정은 영화 속 영화가 흑백이라는 것을 잊게 할 정도로 다채로운 연기를 보여준다. 진한 카리스마로 극의 공기를 바꾸는 박정수와 장영남의 열연도 관객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정수정은 기대 이상이다. 발군의 연기력과 매끈한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주며 주어진 몫을 넘어 멋들어진 결과물을 내놓는다.

김지운 감독은 그간 ‘조용한 가족’(1998)을 시작으로 ‘반칙왕’(2000),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등을 통해 장르적으로 끊임없이 도전을 꾀해왔다. 한국 영화계에서는 늘 보기 어려운 길을 만들어왔다.

‘거미집’에서 배경음악으로 ‘한동안 뜸했었지’가 울려 퍼질 때, 한동안 뜸한 것 같았던 그의 새로운 도전이 다시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느껴져 한층 더 반가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토록 흥미로운 이야기와 배우들의 기막힌 앙상블, 감독의 야심 찬 도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대중성을 기반으로 한 흥행성까지 담보했는지 묻는다면 지체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는 쉽지 않다.

영화라는 예술에 대한 질문을 넘어 본질적으로는 각자 다른 욕망을 가진 인간 군상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거미집’이 포괄적인 관객에게 소구될 수 있는 킬링타임용 오락영화와는 다소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 ‘거미집’. 김지운 감독 연출. 송강호,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정수정, 박정수, 장영남 등 출연.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32분. 2023년 9월 27일 극장 개봉.

YTN 김성현 (jamkim@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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