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은 지난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YTN 사옥에서 영화 '차박-살인과 낭만의 밤'(이하 '차박')을 연출한 형인혁 감독을 만났다. 형 감독은 버클리 음대를 졸업하고, 뉴욕 필름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한 무서운 신예. 제작사 타이거스튜디오 김영섭 대표에게 발탁돼 32살 비교적 이른 나이에 장편영화 연출 데뷔작을 선보이게 됐다.
이 영화는 지난 13일 국내 개봉했다. 영화는 평온한 일상, 사랑하는 아내, 모든 것이 완벽했던 한 남자가 결혼기념일을 맞아 떠난 차박 여행에서 낯선 인기척과 함께 순식간에 악몽 같은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배우 데니안, 김민채, 홍경인 씨 등이 출연했다.
영화는 저예산 영화에 속하지만,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선전 중이다. 일찍이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았다. 지난 5월 제76회 칸 필름마켓에서 공개돼 화제를 모았고, 제8회 포틀랜드호러영화제에 수상하는 등 쾌거를 이룬 것. 올 하반기 아시아 11개국 개봉을 확정하며 해외 관객과 만날 채비도 마쳤다.
'차박'의 국내 개봉 일주일 차를 맞이한 형 감독은 관객들의 반응을 세심하게 체크한 모습이었다.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있지만, 저예산으로 제작됐음에도 열연을 아끼지 않은 배우들, 어려운 한국 영화 시장 상황에서도 영화가 예정된 스케줄대로 개봉해 관객들을 만나게 된 것에 감사한 마음이 크다고 전했다.
◆ "많은 분들 찾아주셔서 감사…수작들과 같은 시기 경쟁 영광"
영화 '차박'은 작품명 그대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상 소재인 차박 여행이 주요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이 된다. 현실 밀착형 공포를 선택한 것이 차별점이다. 형 감독은 제작사 대표의 제안으로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지난해 여름, 산속에서 날씨, 벌레, 시간과의 싸움을 해가며 치열하게 만들었기에 입봉작을 선보이는 감회가 남다르다.
"배우분들, 스태프분들 모두 최선을 다해 만들었는데 관객분들을 만나게 돼 기뻐요. 좌석 점유율이 높지 않지만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감사하고, 더 많은 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다양한 장르 영화들이 같이 개봉해있고, 수작들이 있는데 같이 걸려서 경쟁한 것 자체가 영광스럽습니다."
이 영화는 그룹 god의 멤버이자 배우 데니안 씨가 12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으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데니안 씨는 극중 남주인공 '수원' 역을 맡아 캐릭터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형 감독은 시나리오 각색 과정에서부터 데니안 씨를 1순위로 떠올렸다고 밝혔다.
"저와 송은결 작가님, 이현호 작가님이 함께 두 달 정도 각색하면서 데니안 씨를 떠올렸고, 세 사람 모두 가장 애정 하는 캐릭터를 꼽으라면 '수원'이라고 할 정도로 만족하고 있어요. 수원은 관객으로 하여금 '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의심하게 하는 역할이라 미묘한 감정연기가 필요했는데 그런 부분을 잘 표현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데니안 씨의 출연으로 첫 화제몰이를 했으나, 막상 영화를 보면 감정의 진폭이 큰 '미유' 역을 맡아 열연한 신예 김민채 씨도 존재감도 대단하다. 형 감독은 김민채 씨를 만나 비로소 미유 캐릭터가 완성됐다며 극찬했다. 더불어 김태균, 한민엽 씨 등 남녀 주인공의 주변인물로 극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가져가는 역할을 해준 배우들에 대한 애정도 아낌없이 표현했다.
"'미유'의 사촌동생 '홍빈' 역의 김태균 씨는 500대 1의 경쟁률을 뚫었어요. 연기톤이 독특한 매력이 있었어요. 홍빈을 통해 폭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스토리의 긴박함에 초점을 두고 편집하다보니 홍빈의 뒷이야기가 생략돼 아쉬워요. '환호' 역의 한민엽 씨는 미스터리한 인물로 두 얼굴을 보여줘야 하는 역할인데, 무서울 정도로 눈빛이 강렬했기 때문에 '이 분이면 되겠다' 싶었죠."
◆ "영화음악·작곡 전공, 美서 연기 경험…연출로서 큰 장점"
이색적인 소재만큼이나 형 감독이 '차박'을 연출하게 된 계기도 독특했다. 그 과정은 '우연'이기도, '운명'이기도 했다. 당초 한 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작가 모집 공고를 보고 제작사 타이거스튜디오의 문을 두드렸던 형 감독은 김영섭 대표에게 '차박'의 연출을 맡아보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김 대표는 SBS 드라마 본부장 시절 '낭만닥터 김사부', '육룡이 나르샤' 등 히트작으로 SBS 드라마 전성기를 이끌었던 인물.
"제 시나리오를 들고 제작사에 찾아갔는데 그건 보류가 됐고요(웃음). 단편과 포트폴리오를 보고 '차박'을 제안해 주셨어요. 감사하고 신기하죠. 김 대표님은 후임 양성에 진심이신 것 같아요. 이유 없는 인연인데, 한결같이 서포트해 주셔서 감사하고 힘이 돼요. 영화 공부를 위해 미국에 처음 갔을 때, LA에서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도 신뢰를 주는 분들이 있었는데 그런 인연은 10년에 한 번 정도 나타나는 것 같아요. 신뢰를 주신 만큼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큽니다."
형 감독은 제작사의 꾸준한 지원과 신뢰에 그저 감사하다는 입장이지만, 외부에서 보면 제작사가 가능성을 가진 재자를 발 빠르게 발굴해낸 그림이다. 실제로 형 감독은 뉴욕 필름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국에서 조감독 생활을 거치는 등 기량을 다져왔기에 제작사 입장에서는 욕심낼 수밖에 없었을 터. 배우로 활동한 이력도 갖고 있어 연출자로서 차별화되는 지점도 갖고 있다.
"사실 미국에서 연기라기엔 작은 역할을 했었고, 뮤직비디오에 몇 편 출연했는데 화제가 돼 갑자기 에이전트가 생겼죠. 하지만 군대도 가야 했고, 한국에서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돌아왔어요. 조니뎁의 맥주 광고 상대역의 대역을 맡아 같이 시간을 보낸 적이 있는데 기억에 남아요. 연기를 다시 할 생각은 없지만, 제 연기 경험이 배우들이 몰입할 때 그 감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줘요."
독특한 이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연출가로서의 삶을 시작했지만, 학부에서는 음악을 전공했다. 버클리에서 영화음악과 작곡을 전공한 만큼 음악에 대한 조예가 상당하다. 그의 섬세한 감성은 '차박'에도 그대로 스며들었고, 극중 남녀 주인공이 가창을 통해 서로에 대한 진심을 전하는 장면이 특히 공들여 완성됐다. 영화의 OST '운명'은 개봉 전 두 버전의 음원으로 발매돼 영화의 여운을 나눈다.
"촬영에 앞서 김수빈 작사가님에게 작사를 부탁드렸고, 영화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은 멋진 가사가 나왔고, 송우진 작곡가님께서 정말 좋은 곡을 써주셨어요. 이 곡을 위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죠. 현장에서 데니안 씨가 가창할 때 울컥한 건, 산꼭대기에서 반주도 없이 부를 때 많은 스태프들이 감동했기 때문이에요. 데니안 씨가 연기자로서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지금까지 축적해온 힘 때문이라 생각해요."
◆ "해외 관객 만날 준비…캐릭터 눈 속 진심 전해졌으면"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꼭 1년 반. 많은 이들의 노력과 애정이 담긴 작품이지만, 대중의 평가가 늘 우호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형 감독은 좋은 평가와 지적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그는 인터뷰에서 인상 깊었던 리뷰와 관람평을 캡처하고 하이라이트로 표시한 화면들을 보여주며 느끼고 배운 점이 많다고 덧붙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반응이 궁금했다.
"스릴러 영화인만큼 긴장감을 느끼고 경험적인 재미를 드리고 싶었고, 보고 나서 남는 인상은 로맨스적인 부분이면 했는데 그런 부분을 기억해 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다회차 관람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때마다 캐릭터의 서사와 로맨스에 집중해주시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이제 해외 개봉도 앞두고 있는데, 캐릭터들의 눈 속에 담긴 진심이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9월 극장가, 대작의 틈바구니 속에서 선전 중인 '차박'은 한국 스릴러 영화의 지평을 넓히고, 트렌드를 이끌 참신함을 갖춘 연출 신예를 발견했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를 갖는다. 성공적으로 이름을 알린 신인 감독이 새롭게 관심 갖는 주제, 앞으로의 방향성이 궁금했다.
"지하실에서 시작한 밴드, 차고에서 시작한 스타트업처럼 '차박'이 걸어온 길도 파란만장했지만, 작은 영화도 (관객에게) 닿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줬잖아요. 그런 이야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비긴 어게인'이나 '라라랜드' 같은 음악영화에도 관심이 많고, 드라마처럼 긴 호흡도 해보고 싶어요. 현장이 좋습니다."
[취재 = YTN 강내리 기자/사진 = YTN 이새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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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강내리 (nrk@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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