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터뷰] "난 ADHD의 수혜자"…'히트메이커' 원태연, 장문으로 쓴 고백

[Y터뷰] "난 ADHD의 수혜자"…'히트메이커' 원태연, 장문으로 쓴 고백

2025.06.05.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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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왔다 하면 흥행을 일으키는 스타 시인 겸 작사가 원태연은 수년 전 난독증임을 고백했다. 글을 쓰는 사람이 글을 잘 못 읽는다니. 아주 인상 깊었던 이 고백에 관해 더 자세히 물으니 ‘ADHD를 동반한 난독증’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놀라움과 동시에 다소 분주하고 예민한 분위기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궁금해졌다. 글을 자주 오독하는 그가 어떻게 가슴 찡한 단어들만 골라내는지.

"ADHD를 가진 사람 중 2%는 창작자가 된대요. ,b> 전 ADHD의 수혜자죠. 난독증을 가진 사람 중에 행운아고요."

한국난독증협회 홍보대사도 역임 중인 그는 "난독증 환자로 사는 게 얼마나 피곤한지 모를 거다. 사람들은 책을 못 읽는 병으로 알고 있지만, 난 흥미를 느끼는 책은 속독으로도 본다. 각자 못 읽는 이유는 다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난 운이 좋게도, 잘못 읽어서 좋게 된 경우가 많았다. 잘못 듣고, 잘못 본 것에서 내 개성이 나왔고, 글이 독특해졌다"고 털어놨다. 그가 스스로 행운아라고 믿는 이유다.

ADHD 증상을 완화해 주는 약을 먹으면 난독이 잠시 사라지지만, 원태연 작사가는 주기적으로 약을 복용하지는 않는다. 그는 "약을 먹으면 신문은 잘 보게 되는데, 창작이 안 된다"며 "평범해지고 싶지만 난 창작자니까, 그런 식으로는 싫다"고 말했다.

시인으로서도 마찬가지지만, 작사가 원태연은 시작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작사가로서 데뷔작인 김현철의 '왜 그래'가 그야말로 대히트를 쳤고, 갓 전역한 대학생인 그에게 작사 요청이 빗발쳤다. 그는 "그땐 대한민국 모든 가사 작업이 다 내게 들어왔다. 대학 복학 뒤에 '나도 고민 같은 거 하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할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 이후 샵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 유미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 장나라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 스페이스A '어게인(Again)', 백지영 '그 여자', 지아 '술 한잔해요', 성시경 '안녕', 박명수 '바보에게 바보가', 오렌지캬라멜 '방콕시티' 등 숱한 히트곡의 노랫말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걱정이라곤 티끌만큼도 없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정작 그는 작사가로 살아온 30년에 대해 "야구로 치면 대타자 같은 인생이었다"고 의외의 답변을 내놨다.

"곡이 훌륭한데 작사가 잘 안 됐던 곡들이 저한테 의뢰가 많이 왔어요. 늘 대타 같은 거죠. 그래서 더 절실한 마음으로 타석에 들어섰던 거예요. 누군가 1시간 동안 휘두를 수 있는 칼을 준다면 50분은 칼을 가는 데 쓰겠다는 말처럼, 자연스럽게 저는 그런 상황에서 작사를 하게 된 거죠."

그래서 원태연 작사가의 30년은 늘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매번 작품을 쓰며 헤매는 경우가 태반이었지만, 행운과 감사함이 가득하기도 했던 시간이었다. 이러한 그의 인간미 넘치는 고백을 담아 최근 에세이집 '원태연의 작사법'에 담기도 했다. 그가 쓴 히트곡들을 따라 지난 시간을 그렸다.

원태연 작사가는 이 책에 대해 "하드코어 반성문이고, 일기처럼 쓴 책"이라고 소개했다. 그만큼 고백에 가까운 내용들이다. 매번 작사가 어려웠던 그가 작사법을 가르친다기보다는, 자신만의 경험을 털어놓는다. 시와 가사, 단문에 능통한 그가 쓴 몇 안 되는 산문인데, '단문의 조합'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정도다. 그래서 더 읽기 쉽다.

스스로 "참 복 많은 작사가"라고 말하지만, "피라미드의 가장 밑단에 있는 직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작사가는 모두를 만족시켜야만 하는 직업이고, 내 가사가 거절당하면 다른 사람의 가사로 곡이 탄생하는 걸 지켜봐야 하는 슬픔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시장 상황에서는 작사가의 위치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추세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데모에 몇몇 가사가 이미 적혀 있고, 빈칸의 가사를 써 달라고 하는데, 자유롭지 못하지 않나. 그리고는 작사 지분 12.5%니 참여하시겠냐고 요청이 온다"며 "전문 작사가의 자리는 점점 없어지고, 이대로라면 김이나가 마지막 스타 작사가일지도 모른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원태연은 작사가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지금도 가사 창작에 열심이다. 나아가 작사가 지망생들에게 도전 의식을 가지라는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 "두드려라. 지팡이 부러질 때까지."


YTN star 오지원 (bluejiwon@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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