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리뷰] 윤가은 세계의 정점, 눈 시리게 찬란한 위로 '세계의 주인'

[Y리뷰] 윤가은 세계의 정점, 눈 시리게 찬란한 위로 '세계의 주인'

2025.10.16. 오후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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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리뷰] 윤가은 세계의 정점, 눈 시리게 찬란한 위로 '세계의 주인'
영화 '세계의 주인' 스틸컷 ⓒ㈜바른손이앤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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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들', '우리집'을 통해 아이들의 세계를 누구보다 깊이 있고 진솔하게 탐구해 왔던 윤가은 감독이 6년 만에 '세계의 주인'을 들고 관객들을 찾아왔다.

'세계의 주인'은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열여덟 여고생 ‘이주인’(서수빈 분)이 전교생이 참여한 서명운동을 홀로 거부한 뒤 네 번에 걸쳐 의문의 쪽지를 받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그간 윤가은 감독이 아이들의 관계 맺기를 중심 소재로 다뤄왔다면, '세계의 주인'에서는 10대 소녀의 복잡한 내면과 정체성, 그리고 그를 둘러싼 세계의 균열을 주요 소재로 내세워 한층 확장된 세계관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윤 감독은 한국 영화에서는 유독 주변부에 머물렀던 아이들의 심리와 관계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가져와, 어른들의 세계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통찰력을 보여주며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 왔다.

'우리들'에서는 친구 관계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우리집'에서는 가족 문제에 대한 고민을 통해 관계의 본질과 성장의 아픔이라는 세대를 초월한 보편적 주제를 논한 바 있다. 그의 이러한 독창적 작가주의는 이번 작품에 이르러 의심할 여지 없이 정점에 가닿은 듯하다.
영화 '세계의 주인' 포스터 ⓒ㈜바른손이앤에이

'세계의 주인'은 단순히 한 소녀의 성장담을 넘어, '피해자다움'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스크린에 아로새긴다. 주인공인 주인은 누구보다 쾌활하고 장난기 넘치는 여고생이지만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 영화는 그런 주인의 모습을 통해 '피해자는 슬퍼해야만 한다' 혹은 '상처는 씻을 수 없다'와 같은 우리 사회의 폭력적인 시선과 통념에 정면으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하는 것, 자신의 상처를 자신의 언어로 명명하는 것의 용기에 대해 논한다.

이러한 주제 의식을 전달하는 방식 또한 놀랍도록 정교하다. 그 어떠한 등장인물, 장면, 대사 하나 허투루 쓰이는 법이 없을 정도로 밀도가 높다. 이야기가 가진 흡입력은 러닝타임 내내 관객을 단박에 사로잡는다. 익명의 쪽지를 매개로 주인의 비밀과 진실이 한 겹씩 벗겨질수록, 이야기가 가진 힘은 점점 더 거대하고 강력해지며 보는 이를 강하게 끌어당긴다.

배우들의 호연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성취 중 하나다. 타이틀롤을 맡은 신예 서수빈의 섬세한 감정 표현과 경이로울 정도로 다채로운 연기는 단연 이 영화의 꽃과 다름없다. 티 없이 해사하고 명랑한 모습부터 무너져 내리는 순간의 처절함까지, 신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영화 '세계의 주인' 스틸컷 ⓒ㈜바른손이앤에이

여기에 고민시는 그간 보지 못했던 또 하나의 새로운 얼굴을 꺼내 보이며 극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장혜진은 자신의 자리에서 묵직하게 제 역할을 해내며 극의 무게추 역할을 해낸다. 이처럼 주조연 가릴 것 없이 모든 배우가 빚어내는 완벽한 연기 앙상블은 작품을 한층 더 완벽하게 완성시킨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위대한 지점은, 은연중 '피해자다움'에 대해 정의 내리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이면을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담아냈다는 데 있다. 상흔이라고 해서 꼭 흉할 것이라는 선입견과 편견을 깨고, 상처는 흉터가 아닌 그저 무늬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아픔 속에서도 자신의 일상과 존엄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생애를 누구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껴안는다.

'세계의 주인'은 윤가은 감독이 왜 우리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꾼인지를 다시 한번 증명하는, 아프지만 찬란한 위로와 용기를 건네는 걸작이다. 윤 감독이 건네는 따스한 포옹은 스크린 너머 관객 각자의 세계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용기의 씨앗이 돼줄 것이다.

영화 '세계의 주인'. 윤가은 감독 연출. 배우 서수빈, 장혜진 주연.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9분. 2025년 10월 22일 극장 개봉.

YTN star 김성현 (jamkim@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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