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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터뷰] "영화는 믿을 수 있는 기적"…윤가은 감독이 말하는 '세계의 주인'](https://image.ytn.co.kr/general/jpg/2025/1020/202510201421150605_d.jpg)
윤가은 감독 ⓒ㈜바른손이앤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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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우리집'을 통해 아이들의 세계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평단과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윤가은 감독이 6년 만의 신작 '세계의 주인'으로 돌아왔다. 영화는 제50회 토론토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한국 영화 최초로 초청되고 제9회 핑야오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과 관객상을 동시에 거머쥐며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특히 '세계의 주인'은 성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감독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닌 상처 입은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지속해나가는 과정에 집중하며 관객을 끌어 당긴다.
한층 더 깊어지고 단단해진 세계를 구축하며 "올해 최고의 한국 영화"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윤가은 감독과 오늘(20일) 서울시 종로구에서 만나 영화와 관련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세계의 주인'은 성폭력 피해 생존자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감독은 자극적인 사건 묘사나 해결 과정을 좇지 않는다. 대신 18세 소녀 '이주인'(서수빈 분)이 상처를 안고 어떻게 자신의 일상을 살아내고, 주변 세계와 관계 맺는지를 찬찬히 따라간다. 윤 감독은 "사건이 아니라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며 "그것이 어떤 방면으로든 해결이 됐지만 그 이후에도 삶은 지속되니까, 그 과정에서 부딪히는 진짜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는 이야기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야기의 첫 출발점은 '10대 소녀의 사랑과 연애'에 대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판타지를 걷어내고 현실에 가까워질수록,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는 불안하고 위험한 폭력의 경험과 떼어놓을 수 없었다. 도망치고 싶은 주제였지만, 윤 감독은 이금희 작가의 소설 '유진과 유진'을 다시 읽으며 방향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고.
이후 한국성폭력상담소를 통해 실제 생존자들을 인터뷰하며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그는 "생존자분들께 '요즘 가장 큰 고민이 뭐예요?'라고 물었을 때,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할까', '일과 삶의 밸런스를 어떻게 맞출까' 같은 아주 보통의 고민을 듣는 순간, 제 안의 고정관념이 무참히 깨졌다"고 회상했다.
전작 이후 6년의 공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윤 감독에게 지난 6년은 혹독한 성장통의 시간으로 회상했다. 팬데믹으로 극장가가 위축되며 "직업이 없어질 수 있겠다"는 불안에 휩싸였고, 시리즈물 작업에 도전하며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자신이 얼마나 무지했는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두 편의 장편을 찍고 나니 스스로에 대한 매너리즘이 생겼고, 내가 진짜 영화를 모른다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다"며 "재능이 없어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하나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이러한 위기감은 '변해야 한다'는 강한 동기로 작용했다. 윤가은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게 계속 재미있으려면 안 해본 것들을 용감하게 시도해야 했다"고 말한다. '세계의 주인'은 그 도전의 결과물이다.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던 기존의 1인칭 방식에서 벗어나, 인물을 둘러싼 주변 세계의 반응까지 담아내는 3인칭 서사로의 전환은 가장 큰 실험이었다. 그는 "저와 모든 작업을 함께한 편집 감독이 '이번 작업하면서 제가 뭔가 균열을 내고 싶다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고 하더라"며, 스스로 정돈된 톤에서 벗어나려는 무의식적인 열망이 있었음을 밝혔다.
윤 감독의 영화는 신인 배우들의 놀랍도록 자연스러운 연기로 정평이 나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신예 서수빈의 연기는 무엇보다 밝게 빛난다. 늘 보석 같은 신인의 연기를 끌어내는 비결은 무엇일까?
윤가은 감독은 '진짜 같은' 순간에 답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진짜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지만, 시나리오만으로 그 순간을 모두 담아낼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한다고. 그래서 그는 자신의 고민을 배우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함께 답을 찾아간다.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그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특히 주인공 '주인' 역의 서수빈 배우는 긴 오디션 과정 끝에 만난 보석이었다. 윤 감독은 "보통의 건강한 체격을 가진 몸이 주는 신뢰가 있었고, 상대 배우의 모든 표현에 귀 기울이는 모습에서 가능성을 봤다"고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그는 엄청난 부담을 느꼈을 서수빈에게 "나도 이 이야기가 부담스럽고 힘드니, 서로 기대서 해결해보자"고 말하며 두려움을 나눴다고 말했다. 여기에 데뷔 초부터 윤 감독의 팬임을 밝혀온 고민시 배우를 특별출연으로 섭외해 극의 안정감을 더했다.
윤가은 감독은 영화는 현실을 담는 그릇, 그 이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뉴스나 다큐멘터리가 현실을 고발한다면, 극영화는 그 현실을 어떤 방식으로 가공해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그의 영화가 어두운 현실을 다루면서도 끝내 밝고 희망적인 톤을 잃지 않는 이유다.
"현실에서는 매일 기적이 일어나지만, 뉴스는 그런 기적을 보도하지 않는 것 같아요. 영화는 그런 지점을 다룰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죠. 그런 바람이 어두운 이야기를 다룰 때도 더 밝은 쪽으로 가려고 하는 저의 의지로 묻어나는 것 같아요"
짧게는 한 시간 반, 길어야 세 시간 동안 누군가의 삶을 강렬하게 대리 체험하고, 극장을 나설 때 들어갈 때와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경험. 윤 감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화만의 힘을 여전히 믿는다. '세계의 주인'은 그 믿음 위에서 피어난, 또 하나의 작지만 단단한 기적이다.
윤가은 감독의 새 영화 '세계의 주인'은 오는 22일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YTN star 김성현 (jamkim@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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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세계의 주인'은 성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감독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닌 상처 입은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지속해나가는 과정에 집중하며 관객을 끌어 당긴다.
한층 더 깊어지고 단단해진 세계를 구축하며 "올해 최고의 한국 영화"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윤가은 감독과 오늘(20일) 서울시 종로구에서 만나 영화와 관련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세계의 주인'은 성폭력 피해 생존자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감독은 자극적인 사건 묘사나 해결 과정을 좇지 않는다. 대신 18세 소녀 '이주인'(서수빈 분)이 상처를 안고 어떻게 자신의 일상을 살아내고, 주변 세계와 관계 맺는지를 찬찬히 따라간다. 윤 감독은 "사건이 아니라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며 "그것이 어떤 방면으로든 해결이 됐지만 그 이후에도 삶은 지속되니까, 그 과정에서 부딪히는 진짜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는 이야기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야기의 첫 출발점은 '10대 소녀의 사랑과 연애'에 대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판타지를 걷어내고 현실에 가까워질수록,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는 불안하고 위험한 폭력의 경험과 떼어놓을 수 없었다. 도망치고 싶은 주제였지만, 윤 감독은 이금희 작가의 소설 '유진과 유진'을 다시 읽으며 방향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고.
윤가은 감독 ⓒ㈜바른손이앤에이
이후 한국성폭력상담소를 통해 실제 생존자들을 인터뷰하며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그는 "생존자분들께 '요즘 가장 큰 고민이 뭐예요?'라고 물었을 때,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할까', '일과 삶의 밸런스를 어떻게 맞출까' 같은 아주 보통의 고민을 듣는 순간, 제 안의 고정관념이 무참히 깨졌다"고 회상했다.
전작 이후 6년의 공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윤 감독에게 지난 6년은 혹독한 성장통의 시간으로 회상했다. 팬데믹으로 극장가가 위축되며 "직업이 없어질 수 있겠다"는 불안에 휩싸였고, 시리즈물 작업에 도전하며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자신이 얼마나 무지했는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두 편의 장편을 찍고 나니 스스로에 대한 매너리즘이 생겼고, 내가 진짜 영화를 모른다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다"며 "재능이 없어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하나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이러한 위기감은 '변해야 한다'는 강한 동기로 작용했다. 윤가은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게 계속 재미있으려면 안 해본 것들을 용감하게 시도해야 했다"고 말한다. '세계의 주인'은 그 도전의 결과물이다.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던 기존의 1인칭 방식에서 벗어나, 인물을 둘러싼 주변 세계의 반응까지 담아내는 3인칭 서사로의 전환은 가장 큰 실험이었다. 그는 "저와 모든 작업을 함께한 편집 감독이 '이번 작업하면서 제가 뭔가 균열을 내고 싶다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고 하더라"며, 스스로 정돈된 톤에서 벗어나려는 무의식적인 열망이 있었음을 밝혔다.
영화 '세계의 주인' 포스터 ⓒ㈜바른손이앤에이
윤 감독의 영화는 신인 배우들의 놀랍도록 자연스러운 연기로 정평이 나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신예 서수빈의 연기는 무엇보다 밝게 빛난다. 늘 보석 같은 신인의 연기를 끌어내는 비결은 무엇일까?
윤가은 감독은 '진짜 같은' 순간에 답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진짜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지만, 시나리오만으로 그 순간을 모두 담아낼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한다고. 그래서 그는 자신의 고민을 배우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함께 답을 찾아간다.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그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특히 주인공 '주인' 역의 서수빈 배우는 긴 오디션 과정 끝에 만난 보석이었다. 윤 감독은 "보통의 건강한 체격을 가진 몸이 주는 신뢰가 있었고, 상대 배우의 모든 표현에 귀 기울이는 모습에서 가능성을 봤다"고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그는 엄청난 부담을 느꼈을 서수빈에게 "나도 이 이야기가 부담스럽고 힘드니, 서로 기대서 해결해보자"고 말하며 두려움을 나눴다고 말했다. 여기에 데뷔 초부터 윤 감독의 팬임을 밝혀온 고민시 배우를 특별출연으로 섭외해 극의 안정감을 더했다.
영화 '세계의 주인' 스틸컷 ⓒ㈜바른손이앤에이
윤가은 감독은 영화는 현실을 담는 그릇, 그 이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뉴스나 다큐멘터리가 현실을 고발한다면, 극영화는 그 현실을 어떤 방식으로 가공해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그의 영화가 어두운 현실을 다루면서도 끝내 밝고 희망적인 톤을 잃지 않는 이유다.
"현실에서는 매일 기적이 일어나지만, 뉴스는 그런 기적을 보도하지 않는 것 같아요. 영화는 그런 지점을 다룰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죠. 그런 바람이 어두운 이야기를 다룰 때도 더 밝은 쪽으로 가려고 하는 저의 의지로 묻어나는 것 같아요"
짧게는 한 시간 반, 길어야 세 시간 동안 누군가의 삶을 강렬하게 대리 체험하고, 극장을 나설 때 들어갈 때와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경험. 윤 감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화만의 힘을 여전히 믿는다. '세계의 주인'은 그 믿음 위에서 피어난, 또 하나의 작지만 단단한 기적이다.
윤가은 감독의 새 영화 '세계의 주인'은 오는 22일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YTN star 김성현 (jamkim@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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