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별이 지다…故 이순재의 발자취(종합)

영원한 별이 지다…故 이순재의 발자취(종합)

2025.11.25. 오전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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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최고령 배우, 25일 새벽 별세
'햄릿' 보며 키운 꿈, '대발이 아빠' 넘어 '방탄노년단'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드라마·연극 무대 지킨 '영원한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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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5일 새벽, 한국 대중문화예술사의 거목이 마침내 눈을 감았다. 현역 최고령 배우로 마지막 순간까지 예술혼을 불태웠던 이순재가 향년 90세의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고인은 지난해 말부터 건강 이상설에 휩싸이며 연극 활동을 잠시 멈추고 안정을 취해왔으나, 끝내 다시 무대로 돌아오지 못하고 팬들의 곁을 떠났다. 그의 타계는 단순한 원로 배우의 부고를 넘어, 한국 방송사의 살아있는 역사가 한 페이지를 덮었음을 의미한다.


◆ 철학도, '햄릿'에 홀려 배우가 되다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4살 때 조부모를 따라 서울로 내려왔다(호적상 1935년생). 서울고를 거쳐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진학한 엘리트였으나, 대학 시절 당시 학생들의 값싼 취미였던 영화 감상 중 로렌스 올리비에 주연의 '햄릿'을 보고 운명처럼 배우의 길을 결심했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한 그는 1965년 TBC 1기 전속 배우가 되며 본격적인 브라운관 시대를 열었다. "배우는 딴따라가 아닌 예술가"라는 신념으로 TV와 스크린, 연극 무대를 종횡무진 누볐다. 단역까지 포함해 한 달에 30편 넘는 작품에 출연할 정도로 그의 젊은 날은 치열함 그 자체였다.


◆ 시청률 65%의 전설, 시대의 아버지가 되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곧 한국 드라마의 역사다. '동의보감', '보고 또 보고', '목욕탕집 남자들', '야인시대', '토지', '엄마가 뿔났다' 등 출연작만 140여 편에 달한다.

특히 1991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는 그의 연기 인생에 정점을 찍은 작품이다. 극 중 '대발이 아버지'로 분한 그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표상을 완벽하게 연기하며 시청률 65%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견인했다. 이후 '허준'의 서릿발 같은 스승 유의태, '상도', '이산' 등 사극에서의 묵직한 존재감은 그를 대체 불가능한 '국민 배우'의 반열에 올렸다.


◆ 파격의 '야동순재', 질주하는 '직진순재'

이순재가 위대한 이유는 권위에 갇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70대에 접어들어 출연한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2006), '지붕 뚫고 하이킥'(2009)에서 그는 근엄함을 벗어던지고 코믹 연기에 도전했다. '야동순재'라는 파격적인 별명을 얻으며 어린이 팬들까지 사로잡는 등 전 세대를 아우르는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예능 '꽃보다 할배'(2013)에서는 나이를 잊은 체력과 호기심으로 '직진 순재'라는 애칭을 얻었다. 숲을 보고 길을 찾으며 동생들을 이끄는 그의 모습에서 대중은 진정한 어른의 품격을 보았다.


◆ '방탄노년단'의 열정, 마지막까지 불타오르다

노년의 그는 대학로에서 '방탄노년단'으로 통했다. '세일즈맨의 죽음', '늙은 부부 이야기', '장수상회', '앙리할아버지와 나', '리어왕' 등 연극 무대를 쉼 없이 지켰다.

특히 지난해 KBS 연기대상에서 역대 최고령 대상 수상자가 되며 건재함을 과시했고, 지난 10월 건강 문제로 활동을 중단하기 직전까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와 KBS 2TV 드라마 '개소리'에 출연하며 마지막 연기 혼을 불태웠다. "암기력이 다하고 걸을 수 없을 때가 은퇴"라던 그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 정치인, 그리고 영원한 스승

그는 한때 현실 정치에 몸담기도 했다.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서울 중랑갑에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부대변인과 한일의원연맹 간사 등을 역임했다. 하지만 그의 본령은 언제나 연기였다.

그는 후배 양성에도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 최근까지 가천대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로 강단에 서며, 연기자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연기는 영혼을 쏟는 작업"임을 가르쳤다.


◆ 밤하늘의 별이 되어

'이순재'라는 거대한 산은 이제 우리 곁을 떠났다. 하지만 그가 남긴 수백 편의 작품과, 구순의 나이에도 식지 않았던 뜨거운 열정은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영원히 우리 머리 위에 떠 있을 것이다.

YTN star 김성현 (jamkim@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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