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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해 보이지만 실은 메말라 비틀어진 아랫집의 침묵을 깨부수는 건 윗집의 격정적인 소음이다. 매일 밤 천장을 뚫고 내려오는 이 적나라한 소리와 진동은 남편 민수(김동욱 분)에게는 경멸해야 마땅한 ‘변태적 행위’이자 스트레스지만, 아내 정아(공효진 분)에게는 잊고 살았던 감각을 일깨우는 ‘부러운 자극’이자 욕망의 거울로 다가온다.
하정우 감독의 네 번째 연출작 ‘윗집 사람들’은 윗집과 아랫집 부부 사이의 불협화음과 한 부부 사이 시각 차이에서 출발한다. 스페인 원작 ‘센티멘탈’의 뼈대 위에 하정우 감독 특유의 리듬감을 입힌 이 영화는 층간 소음이라는 외부의 타격을 통해 곪아 있던 내부의 관계를 터뜨리고야 만다.
영화는 ‘동거인’에서 시작해 ‘미지와의 조우’, ‘나이로비 사파리 클럽’, ‘강강수월래’ 그리고 ‘매치 포인트’로 끝나는 5개의 챕터 구성을 취한다. 이는 단순한 서사의 나열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두르고 있던 위선의 껍질을 하나씩 벗겨내는 단계별 장치로 작동한다.
이 작품의 탁월한 성취는 시각적 노출 없이 오로지 청각과 언어만으로 ‘에로티시즘’과 ‘긴장감’을 오간다는 점이다. 카메라는 거실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 네 남녀를 가두고 그들의 입을 통해 액션을 펼친다.
쉼표 없이 쏟아지는 대사의 향연은 흡사 랠리가 끊이지 않는 스포츠 경기처럼 느껴질 정도다. 감독은 오디오의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 빽빽한 대사량과 찰진 말맛으로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데, 이는 야한 장면 하나 없이도 스크린을 뜨겁게 달구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작품은 두 부부를 극명하게 대조시키며 흥미로운 역학 관계를 형성한다. 하정우와 이하늬가 연기한 윗집 부부는 다분히 판타지적이다. 서로의 욕망에 솔직하고, 스와핑조차 ‘사랑과 존중’의 영역으로 해석하는 이들은 현실에 발붙이고 있다기보다 아랫집 부부의 갈등을 도려내기 위해 투입된 하나의 상징이자 도구처럼 보인다.
반면 김동욱과 공효진이 분한 아랫집 부부는 지독한 하이퍼리얼리즘의 산물이다. 갈등을 직면하기보다 회피를 택하고, 서로의 취향조차 모른 채 껍데기만 남은 이들의 모습은 씁쓸한 기시감을 준다.
또한 영화는 윗집의 파격적인 제안을 연료 삼아,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정아가 햇빛 쏟아지는 창가에 알몸으로 서 있었다는 고백은 이 영화가 단순한 섹스 코미디가 아님을 증명하는 결정적 장면이다. 그것은 단순한 일탈이 아닌 건강한 관계 회복에 대한 조용한 아우성이기 때문이다.
결국 영화가 도달하는 곳은 파국이 아닌 재건이다. 정신과 의사 수경(이하늬 분)의 조언처럼 서로를 할퀴고 비난할 바엔 헤어지는 게 낫지만, 민수(김동욱 분)와 정아는 기어이 서로의 밑바닥을 확인한 뒤에야 다시 서로를 바라본다.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을 공유한 뒤에야 비로소 찾아오는 역설적인 안도감. 감독은 이 지점을 포착하며, 관계의 회복이란 낭만적인 화해가 아니라 처절한 인정과 외면하고 싶지 않은 것을 직면함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윗집 사람들’은 하정우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세련되고 영리한 작품으로 보인다. ‘피카츄’를 자처하는 그는 쏟아지는 웃음 속에 소통의 부재와 관계의 허상을 숨겨놓았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관객은 윗집의 ‘섹’다른 소음보다 아랫집의 솔직한 비명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영화는 우리 시대 모든 연인에게 건네는 꽤나 도발적이고 건강한 대화의 초대장이다.
[사진 제공 = 바이포엠스튜디오]
YTN star 김성현 (jamkim@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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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하정우 감독의 네 번째 연출작 ‘윗집 사람들’은 윗집과 아랫집 부부 사이의 불협화음과 한 부부 사이 시각 차이에서 출발한다. 스페인 원작 ‘센티멘탈’의 뼈대 위에 하정우 감독 특유의 리듬감을 입힌 이 영화는 층간 소음이라는 외부의 타격을 통해 곪아 있던 내부의 관계를 터뜨리고야 만다.
영화는 ‘동거인’에서 시작해 ‘미지와의 조우’, ‘나이로비 사파리 클럽’, ‘강강수월래’ 그리고 ‘매치 포인트’로 끝나는 5개의 챕터 구성을 취한다. 이는 단순한 서사의 나열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두르고 있던 위선의 껍질을 하나씩 벗겨내는 단계별 장치로 작동한다.
이 작품의 탁월한 성취는 시각적 노출 없이 오로지 청각과 언어만으로 ‘에로티시즘’과 ‘긴장감’을 오간다는 점이다. 카메라는 거실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 네 남녀를 가두고 그들의 입을 통해 액션을 펼친다.
쉼표 없이 쏟아지는 대사의 향연은 흡사 랠리가 끊이지 않는 스포츠 경기처럼 느껴질 정도다. 감독은 오디오의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 빽빽한 대사량과 찰진 말맛으로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데, 이는 야한 장면 하나 없이도 스크린을 뜨겁게 달구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작품은 두 부부를 극명하게 대조시키며 흥미로운 역학 관계를 형성한다. 하정우와 이하늬가 연기한 윗집 부부는 다분히 판타지적이다. 서로의 욕망에 솔직하고, 스와핑조차 ‘사랑과 존중’의 영역으로 해석하는 이들은 현실에 발붙이고 있다기보다 아랫집 부부의 갈등을 도려내기 위해 투입된 하나의 상징이자 도구처럼 보인다.
반면 김동욱과 공효진이 분한 아랫집 부부는 지독한 하이퍼리얼리즘의 산물이다. 갈등을 직면하기보다 회피를 택하고, 서로의 취향조차 모른 채 껍데기만 남은 이들의 모습은 씁쓸한 기시감을 준다.
또한 영화는 윗집의 파격적인 제안을 연료 삼아,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정아가 햇빛 쏟아지는 창가에 알몸으로 서 있었다는 고백은 이 영화가 단순한 섹스 코미디가 아님을 증명하는 결정적 장면이다. 그것은 단순한 일탈이 아닌 건강한 관계 회복에 대한 조용한 아우성이기 때문이다.
결국 영화가 도달하는 곳은 파국이 아닌 재건이다. 정신과 의사 수경(이하늬 분)의 조언처럼 서로를 할퀴고 비난할 바엔 헤어지는 게 낫지만, 민수(김동욱 분)와 정아는 기어이 서로의 밑바닥을 확인한 뒤에야 다시 서로를 바라본다.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을 공유한 뒤에야 비로소 찾아오는 역설적인 안도감. 감독은 이 지점을 포착하며, 관계의 회복이란 낭만적인 화해가 아니라 처절한 인정과 외면하고 싶지 않은 것을 직면함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윗집 사람들’은 하정우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세련되고 영리한 작품으로 보인다. ‘피카츄’를 자처하는 그는 쏟아지는 웃음 속에 소통의 부재와 관계의 허상을 숨겨놓았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관객은 윗집의 ‘섹’다른 소음보다 아랫집의 솔직한 비명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영화는 우리 시대 모든 연인에게 건네는 꽤나 도발적이고 건강한 대화의 초대장이다.
[사진 제공 = 바이포엠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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