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리뷰] '상자 속의 양',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AI 시대에 건네는 애도의 메시지

[Y리뷰] '상자 속의 양',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AI 시대에 건네는 애도의 메시지

2026.06.05. 오후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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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리뷰] '상자 속의 양',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AI 시대에 건네는 애도의 메시지
영화 '상자 속의 양' 포스터 ⓒ미디어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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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에게 어린왕자가 다가와 양을 그려달라고 조른다. 조종사는 병든 양, 뿔이 난 양, 너무 늙어버린 양을 차례로 그려주지만 어린왕자는 매번 고개를 젓는다. 결국 조종사가 홧김에 구멍이 세 개 뚫린 텅 빈 네모난 상자를 그려주며 "네가 원하는 양은 이 안에 있어"라고 말했을 때, 놀랍게도 어린왕자는 환한 미소를 짓는다.

정해진 형태가 없는 그 상자는 어린왕자가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인 양의 모습을 스스로 투영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7살 아들을 잃고 텅 빈 상실의 공간에 남겨진 부모에게 죽은 아이의 얼굴과 완벽하게 똑같은 AI 휴머노이드는 마음을 치유하는 '상자 속의 양'일까, 아니면 슬픔을 떠오르게 하는 잔혹한 기계일까. 지난달 칸 영화제의 스크린을 묵직한 질문으로 채웠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상자 속의 양'은 지금 이 시대 가장 최신의 기술을 빌려와, 가장 뜨겁고 아픈 가족의 상실을 비추는 작품이다.

영화는 아들 카케루가 사망한 지 2년이 지난 시점, 드론이 택배를 배송하는 머지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시작한다. 남의 집을 지어주는 건축가 오토와 남편 켄 부부 앞에 어느 날 독특한 제안이 온다. 죽은 아들과 조금 더 같이 있고 싶다면, 생성형 AI와 로봇 기술이 결합된 최첨단 휴머노이드를 무상으로 대여해 주겠다는 것.

"여러분의 삶을 행복하게 돕는다"는 회사의 홍보 문구에 누군가는 기적이라 환호하지만, 켄은 남의 불행을 이용해 돈을 번다며 애써 고개를 돌린다.

인간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휴머노이드 앞에서 부부의 첫 반응은 극명하게 갈린다. 엄마 오토는 이 로봇에게서 영혼을 느끼고, 사고가 단지 꿈은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까지 하며 설레여 한다. 반면 아빠 켄은 "저건 기계"라며 끊임없이 선을 긋는다. 말을 걸수록 건강하게 성장한다는 이 존재를 '다마고치'나 '로봇청소기'에 비유하고, 애써 '아저씨'라 부르게 하며 교감의 순간마다 도망치려 애쓴다.
영화 '상자 속의 양' 스틸컷 ⓒ미디어캐슬

하지만 영화는 서서히 부부의 내면을 파고들며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어린왕자의 '상자 속의 양'처럼, 결국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눈앞의 존재가 지닌 것이 카케루 본인의 기억인지, 아니면 카케루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투영된 것인지는 점차 중요하지 않아진다.

카케루의 죽음은 여러 사람의 책임이 뒤엉킨 혹은 누구의 책임도 아닌 하나의 사고였다. 잘못한 대상을 찾아 원망하거나 자신의 엄마를 탓하며 책임을 돌리고 싶어 했던 오토, 그리고 스스로를 자책하던 켄은 이 가상의 존재를 통해 가슴 깊숙한 곳에 있던 응어리를 비로소 풀어낸다.

카케루와 같지만 카케루가 아닌 이 휴머노이드에게 켄은 "미안하다"는 진심을 전하고, 부부는 길었던 상실의 늪에서 서서히 빠져나온다.

AI라는 시대적 화두를 끌어왔지만, 결국 '상자 속의 양'은 고레에다 감독이 늘 천착해 온 '가족'과 '상실, 그리고 치유'에 관한 이야기다. 다만 감독의 전작들, 특히 가장 최근작인 '괴물'이 보여주었던 다층적이고 복잡한 서사 구조에 비하면, 이번 작품의 전개는 다소 직선적이고 단순하게 흘러가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영화 '상자 속의 양' 스틸컷 ⓒ미디어캐슬

그럼에도 이 헐거운 틈을 촘촘하게 메우는 것은 다름 아닌 배우들의 힘이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배우들의 선한 얼굴과 무해한 눈빛은, 자칫 평면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에 강력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기꺼이 그들의 상처를 믿게 하고 치유의 여정에 동참하게 만드는 표정들. 그 서사를 향한 믿음이야말로 이 영화를 끝까지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뼈대일 것이다.

영화 '상자 속의 양'.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연출. 배우 아야세 하루카, 다이고, 쿠와키 리무 출연.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27분. 2026년 6월 10일 극장 개봉.

YTN star 김성현 (jamkim@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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