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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이상학 기자] 꿈의 퍼펙트 게임. 과연 한국프로야구에서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메이저리그가 '퍼펙트게임' 풍년 시대를 맞고 있다. 지난 15일(이하 한국시간) 펠릭스 에르난데스(시애틀)가 탬파베이와의 홈경기에서 아웃카운트 27개를 삼진 12개, 뜬공 8개, 땅볼 5개, 직선타 2개로 처리하며 단 한 명의 타자도 출루시키지 않은 채 역대 23번째 퍼펙트게임 역사를 썼다. 필립 험버(화이트삭스)와 맷 케인(샌프란시스코)에 이어 올해만 벌써 3번째 퍼펙트게임이다.
▲ 퍼펙트게임, 노히트노런보다 40배 어렵다
퍼펙트게임은 선발투수가 경기가 끝날 때까지 모든 타자를 상대로 안타와 볼넷 그리고 실책과 폭투로 단 한명의 타자도 진루시키지 않고 직접 마무리한 경기를 의미한다. 수학적인 확률상으로 9회 동안 안타를 허용하지 않는 확률은 1000분의 1에 가까우며 노히트노런보다 무려 40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흔치 않은 대기록으로 희소성이 있고 값어치가 크다.
지난 1886년 내셔널리그로 출범하며 올해로 136년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는 1880년 6월12일 웨체스터 리 리치먼드를 시작으로 올해 험버·케인·에르난데스까지 총 23차례 퍼펙트게임이 나왔다. 1936년부터 77년 역사가 되는 일본프로야구에서는 1950년 6월28일 후지모토 히데오(한국명 이팔용)가 최초의 퍼펙트게임 달성한 이후 1994년 5월18일 마키하라 히로미의 15번째 퍼펙트게임을 끝으로 벌써 18년째 나오지 않는 대기록이다.
그러나 1982년 출범한 한국프로야구는 31년째가 됐으나 아직도 퍼펙트게임이 없다. 지난해 롯데 이용훈이 2군 퓨처스리그에서 달성한 게 유일한 기록. 31년간 1군에서 페넌트레이스 총 1만4364경기가 치러졌지만 노히트노런만 10차례 나온 게 전부다. 노히트노런마저도 2000년 5월18일 송진우를 끝으로 12년째 나오지 않고 있다. 메이저리그는 5.9년, 일본프로야구에서는 5.1년에 한 번꼴로 퍼펙트게임이 나왔으나 한국에서 퍼펙트게임은 차치하더라도 노히트노런마저도 점점 더 희귀해지는 기록이 되어가고 있다.
▲ 한국, 노히트노런마저 사라진 이유는
퍼펙트게임은 고사하고, 왜 노히트노런마저 나오지 않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완투형 투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퍼펙트게임이나 노히트노런은 선발투수가 한 경기를 온전하게 책임졌다는 걸 의미한다. 노히트노런이 나온 1982년부터 2000년까지 19년간 8236경기에서 총 2840완투가 나왔다. 2.9경기당 하나꼴로 완투가 있었다. 그러나 노히트노런이 사라진 2001년 이후로는 6128경기에서 329완투로 18.6경기당 하나꼴로 기대할 수 있는 기록이 됐다. 현역 때 68차례 완투 경기를 한 KIA 선동렬 감독이 "요즘 선발투수들은 5~6이닝만 던지고 나면 자기 할 일 다 했다는 태도를 보인다"며 쓴소리할 만한 상황이 된 것이다.
투수 분업화에 따른 완투형 투수의 감소가 가장 큰 이유이지만 타격의 발전도 빼놓을 수 없다. 현역 시절 통산 100승을 거둔 이상군 한화 운영팀장은 "내가 현역 때 제구가 좋았다고 하지만 그래봤자 평균 138km로 던진 것이었다. 당시에는 스트라이크존이 지금보다 훨씬 넓었고 타자들도 힘이나 기술이 좋은 시절 아니었다. 투수들이 더 우위에 있던 시절에 운 좋게 던진 결과였다"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타자들의 수준이 오르게 됨에 따라 투수들의 퍼펙트게임·노히트노런이 점점 드물어지게 된 것이다.
또 하나는 대기록에 대한 인식 차이다. 투수 출신의 두산 김진욱 감독은 "미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기록의 희생양이 되는 걸 큰 수치로 생각한다. 미국에서 기록이 많이 나오는 건 우리나라보다 힘대힘으로 맞서는 스타일의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우리팀 전력분석원으로 있는 정재훈이 미국 독립리그에서 뛸 때 볼카운트 3B1S에서 변화구를 던졌는데 감독에게 '왜 직구로 승부하지 않았냐'며 혼났다고 하더라"는 일화도 곁들였다. 미국은 정면승부 스타일이다.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더라도 선 굵게 승부한다.
▲ 역대 아까운 퍼펙트게임 도전 사례
한국프로야구 사상 가장 퍼펙트게임에 근접한 투수는 한화 정민철이었다. 그는 1997년 5월23일 대전 OB전에서 역대 9번째 노히트노런을 작성했으나 축하 만큼 아쉬움이 많았다. 9이닝 동안 삼진 8개를 잡으며 무안타 무사사구 무실점에도 포수 패스트볼에 따른 낫아웃으로 심정수를 출루시킨 것에 발목 잡혔기 때문이다. 그것도 8회 1사 23번째 타자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정민철은 "포수 강인권이 없었다면 노히트 노런을 할 수 없었다"고 공을 돌렸다. 실제로 강인권은 마지막 노히트노런으로 남은 2000년 송진우의 기록도 함께 이루며 유승안과 함께 유이하게 노히트노런 2회 포수로 지금껏 남아있다.
원년이었던 1982년 8월15일에는 삼성 황규봉이 대구 삼미전에 선발등판해 8회까지 퍼펙트로 막았지만, 9회초 양승관과 허운에게 연속 안타를 맞고 노히트노런도 날아가며 무사사구 완봉승에 만족해야 했다. 빙그레 이동석도 1988년 4월17일 광주 해태전에서 선동렬과 맞대결에서 역대 4번째 노히트노런을 작성하는 기염을 토했는데 삼진 5개를 잡으며 무안타 무사사구 무실점으로 막았다. 그러나 7회 유격수 장종훈의 송구 실책과 8회 1루수 강정길의 포구 실책 2개 때문에 퍼펙트게임이 좌절됐다.
두산 외국인 투수였던 다니엘 리오스도 9회 1사까지 퍼펙트게임 펼치며 대기록을 목전에 뒀다. 그는 2007년 10월3일 잠실 현대전에서 9회 1사까지 단 한명의 주자도 출루시키지 않으며 최초의 퍼펙트게임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그러나 퍼펙트게임까지 아웃카운트 단 2개를 남겨놓고 상대한 26번째 타자 강귀태에게 좌전 안타를 맞으며 노히트노런까지 한꺼번에 깨졌다. 지난해 8월5일에는 LG 벤자민 주키치가 잠실 한화전에서 8회 2사까지 퍼펙트를 펼쳤으나 24번째 타자 이양기에게 좌전 안타를 맞고 기록이 깨졌다. 강귀태는 8번, 이양기는 6번 타자였다. 모두 하위 타순의 타자에게 의외의 일격을 맞으며 기록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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